"박 계장, 빽 한번 써봐" (23)

2007.02.01 10:58:5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32.  다시 정 서장님을 만나다

 

인사계 친구 녀석이 몹시 다그친다.

 

"그래도 지방청으로 들어올래?"

 

"니 꼴리는 대로 해놔! 임마!"

 

그 녀석이 통박을 굴려댄다.

 

"니가 그렇게 중부청을 희망한 것 맞제?"

 

"그렁게 요놈의 '청'자만 지우면 그렇게 '중부'잖아."

 

"그렁게 내 머리가 어때?"

 

그래서 나는 중부청 대신에 중부를 가게 된다.

 

그게 80년초인가 보다.

 

남대문에 계셨던 정 서장님이 중부서장님으로 와 계셨고 나를 부가주무로 배치해 주셨다.

 

그분과는 두번째 인연인 샘이다.

 

33. 촌티를 벗는 촌놈들

 

유행의 첨단을 자랑하는 명동과 충무로가 중부서의 관할이다.

 

거리에는 양복점, 양화점, 대형 옷가게, 안경점, 전축, 고급가구, 보석, 시계,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멋쟁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우리 직원도 중부에서 한 몇달만 근무하면 얼굴은 어느 사이에 때 국물을 벗고, 표백처리한 것처럼 반질반질해진다.

 

거기다가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양복과 넥타이를 걸치고 싸롱구두를 집어신고 금빛 나는 안경을 걸치고 머리에는 무스를 바르고 폼을 잡는다.

 

그러면 우리 중부직원들은 영락없는 서울깍쟁이가 돼 버린다.

 

그러나 겉포장은 변했어도 내용물은 아직 촌놈이라 말투에서부터 촌티를 못 벗는다.

 

서울생활 35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심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 나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나는 특히 유네스코회관 뒷편에 있던 '잉글랜드' 구두를 즐겨 신었는데 그집 주인 '나 사장'의 말을 듣고는 우리 과 직원모임 시간에 이렇게 지시했다.

 

"여러분! 명동에 나가면 어느 가게나 할 것 없이 사장을 대체로 만날 수 없지요? 그건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가게에 있으면 그날은 적자(赤子)가 나기 때문입니다."

 

"파출소 담당이 와서 한켤레 신고 가면 파출소장이, 차석이 줄줄이 온답니다. 동회도 그렇고 세무서도 그렇답니다."

 

"마치 자기 물건처럼 집어가는데 대책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합 사무실에 피신해 모여서는 하루종일 포커나 고스톱을 치는 게 하루의 일과랍니다."

 

"하루 이틀 말이지 매일을 그래야 되니 죽을 맛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주인이 없으니 종업원들이 장난치고 단골을 놓치게 돼 할 수 없이 가게에 나가면 그날 또 헛장사를 해야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답니다."

 

내 말은 계속됐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담당이라 해서 그집의 물건을 공짜로 얻어 오는 것은 물론, 그집에서 사지도 맙시다."

 

"그래서 명동사장들이 피신처에서 나와 자기 가게에서 편히 장사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모두들 나의 말에 수긍을 하는 것 같았지만, 금태안경 낀 저 녀석과 그 옆의 두 놈은 듣고 있는지 떫은 표정을 짓고 있다.

 

지금 우리 직원들은 그러하지 않겠지만, 그때를 생각해 보면 명동사장들 모두는 이 놈 집어가고 저놈 가져가는데 속이 뒤집히고 쓰리나 말은 못하고 겉으로 웃으려니 참으로 죽을 맛이었음이 분명하다.

 

자형은 전화를 끊고 잠적했는지 연락은 되지 않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니 마누라가 질질 울고 있다.

 

34.  아버지가 빌려 달라 해도 절대로!

 

중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자형이 그 당시에 최고급 승용차였던 '그라나다'를 타고 나를 찾아왔다.

 

사업자금 때문에 우리집을 담보로 융자를 좀 받아야 하겠단다.

 

집문서와 인감을 내일 좀 가져오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자형'은 군 입대후 중령으로 제대하고 수원에서 인조 섬유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박 계장 방금 나간 사람이 누굽니까?"

 

낯선 사람과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을 본 M과장님이 직업적 경험으로 물어보신다.

 

"자형인데요. 융자를 받으려고 집문서를 좀 달랍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나요?"

 

"내일 갖다 주기로 했습니다."

 

"박 계장 정신 나갔나?" 과장님이 펄쩍뛴다.

 

"내말 잘 들어! 집문서는 어느 누가 부탁해도 절대로 내어주면 안돼"하시면서 입장이 곤란한 경우에 거절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 형님이 잘 안됐을 때 우리집에라도 와 계셔야 되지 않습니까?"하고 단호히 거절하라고 하셨다.

 

"절대로 흔들리지 마! 박 계장"

 

이튿날, 출근과 동시에 찾아온 자형에게 미안했지만 과장님의 말씀대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형님은 서운한 내색을 하면서 나갔다.

 

우선은 모면(謀免)했지만, 과장님이 염려한 사건은 그로부터 불과 한달이 되지 않아서 발생했다.

 

'자형'이 또 사무실로 찾아왔다.

 

어음 몇장을 내보이면서 급하게 좀 바꾸어야 되는데 소개를 해달라며 사정을 한다.

 

이때 과장님이 자리에 계신다면 어찌 해야 되는지 물어보겠는데 오늘따라 지방청 회의를 가셨다.

 

나는 꼼짝없이 형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마음이 약해서일까? 지난번 담보건도 미안하고 해서 결국 명동에서 사업하는 몇분을 소개하고 말았다.

 

자형은 그 분들에게 어음을 할인해 갔는데 문제는 그 이튿날이었다.

 

출근을 하자마자 명동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할인해 준 어음 발행회사가 부도라고 신문에 났는데 알고 있느냐"고 한다. 어제 어음을 바꿔 놓고 오늘 부도낸다면 누가 봐도 고의적인 사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됐다. 눈알이 뒤집힌다.

 

자형은 전화를 끊고 잠적했는지 연락은 되지 않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니 마누라가 질질 울고 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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