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빽 한번 써봐" (25)

2007.02.08 09:56:0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누나와 자형은 울면서 미안해 했고, 부모님과 친지들은 실망을 했다. 특히 술도 마셔가면서 공부하라고 집으로 맥주를 보내주신 '장○○'님과, 쉬어가면서 하라고 음료수를 보내주신 정 서장님에게 실망을 드려 더욱 죄송했다.

 

36. 목차에서 정가까지

 

83년 초에 성동세무서로 가게 됐다.

 

거기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근무했기 때문에 별로 기억될 만한 것이 없다.

 

다만 재무부에서 윗분으로 모시던 임복빈 서장님을 다시 뵙게 되고 그분의 솔직담백한 성품과 치밀하고 빈틈없는 일처리 솜씨를 조금은 더 배우게 됐다.

 

나는 부가세 계장으로 보직을 받고 몇달후에 있을 사무관시험에 대비해 지난번 실패를 거울삼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시험과목이 바뀌었다.

 

회계학은 그대로인데 '행정법'이 1차 객관식으로 가고, 그 대신 '조세론'이 2차 주관식으로 새로 들어왔다.

 

조세실무는 직접 체험을 하고 있긴 하지만 조세이론은 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나는 '차병권' 교수가 쓴 '조세개론(租稅槪論)'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경제신문의 사설과 조세에 관한 논문집 등을 탐독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채택된 시험과목이기 때문에 출제경향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회계학은 조금 자신이 있었으나 그래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했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과 정보교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번에 말이야, 감사원하고 같이 치니까 감사원에 유리한 '회계감사론'과 국세청에 유리한 '세무회계' 부분은 절대로 안 나온다 카더라."

 

이런 말이 학원가에서 떠돌았으나 그런 말 때문에 쓰라린 경험이 있는 나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준비생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두 부분을 제외하고 공부하는 것 같았다.

 

자아! 이번에 끝을 내자!

 

첫 시간은 '조세론'이다.

 

50점짜리 큰 문제가 '저성장 저물가 시대의 조세정책'이었다.

 

참으로 알쏭달쏭한 문제이다.

 

나는 성장과 물가는 비례관계임을 전제로 국가는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저성장보다는 일정수준의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세제(稅制)로 직접세보다는 간접세 중심의 세제가 필요하다는 등 횡설수설 썼다.

 

그러나 작은 문제까지 10장의 답안지는 꽉 채웠다.

 

두번째 시간은 회계학이다.

 

문제를 펼치는데 보니 정말 국세청과 감사원에 유리한 문제는 안 나온다는 정보와는 달리 수험생의 허를 찌르는 괘씸한 문제가 나왔다.

 

"나는 이번에 또 실패하면 사표를 써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또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고 창피인가?"

 

큰 문제의 정확한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수익과 비용의 인식과 조정에 관한 문제이었던 것 같다.

 

결국 세무조정과 관련된 문제였고, 작은 문제는 회계감사절차를 묻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전(前)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에 한 페이지도 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봤기 때문에 무난하게 쓸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시험공부는 반드시 각종 루머는 절대로 믿지 말고 '목차(目次)에서 부터 정가(定價)까지 빠짐없이 보라'고.

 

37. 또 떨어지면 사표 쓴다

 

시험은 아무리 잘 봤다고 생각해도 합격자 발표에서 자기이름을 직접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기전까지는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나는 이번에 또 실패하면 사표를 써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또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고 창피인가?

 

이번에 같이 시험을 본 동부서의 P계장과 만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불안과 초조함을 구내식당 커피를 마시며 서로 달래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성동서와 P가 근무하는 동부서는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구내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나의 불안함은 P계장의 큰소리 때문에 점점 초조함으로 변해갔다.

 

"공무원 시험문제는 그런 식으로 나와야 한다."

 

"정말 마음에 들더라."

 

"이렇게 응용하는 문제라야 벼락치기를 막을 수 있다."

 

"책만 달달 읽어서는 이번 시험의 답을 쓸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케인즈의 이론'이 어쩌고저쩌고.

 

매일같이 그의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틀림없이 나는 가망이 없는 것 같아 무척 괴로웠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기간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늘도 P와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특강을 하고, 나는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박 계장님 전환데요" 식당 아주머니가 말했다.

 

"어이! 박 계장! 빨리 올라와!" 우리 K과장님의 전화다.

 

"왜요? 뭔 일이 있습니까?"

 

"축하해! 축하해!"

 

총무처 출신이라 미리 합격자 명단을 입수하신 모양이다.

 

"정말입니까? P는요?"

 

P는 내가 전화를 받는 옆으로 다가와 수화기 가까이에 귀를 쫑긋 갖다 대고 있다.

 

"거긴 잘 모르겠는데요."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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