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탈(脫) 권력기관을 선언했는데, 대선을 앞두고 비자금 정보수집활동을 강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무조사도 실시한다고 하니 다시 권력기관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서울의 한 세무사는 국세청이 지난달 29일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올해 세무조사 방향을 기업 비자금 조성 방지 등 투명성 검증에 맞추겠다고 발표하자 이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사실 국세청이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기업의 비자금 문제에 대해 세무조사라는 칼을 들이대겠다고 한 것은 대선 때마다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일부 기업들의 불건전한 관행도 개선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또 세법이 개정돼 2005년부터는 뇌물, 불법정치자금이 과세대상에 포함된 것도 국세청이 비자금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띠게 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세청의 취지처럼 기업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기업 비자금 조성행위를 단죄하겠다는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극소수로 보인다.
"세금처럼 거둬가는 정치자금을 냈다고 해서 불법행위를 한 것으로 몰아간다면 이는 정의로운 일이 아니며, 그저 기업행위를 불법의 세계로 내모는 일에 불과하다"는 일부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전군표 국세청장이 평소 공언한 "국세청은 더 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다"라는 이미지가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전임 이주성 청장도 '脫(탈) 권력형 집단'을 내세웠고, 서비스 행정기관을 표방해 왔었다.
때문에 조세전문가들은 "국세청이 투명성 검증차원에서 비자금 세무관리를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자칫 정치적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기업 비자금에 대한 차단의지가 세무조사 증가로 이어져 기업 경영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불법정치자금으로 이어지기 쉬운 비자금을 차단하겠다는 국세청의 '시도'가 脫권력기관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고 기업경영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지려면 원칙에 따른 조사대상자 선정과 공정한 집행이 우선돼야 한다.
"원칙을 정했으면 조용한 가운데 착실하게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 조세학자의 평범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