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26)

2007.02.12 09:03:1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P는 자신의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후 자기도 합격했으니 나와 함께 양(兩)서의 서장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자고 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축하하면서 서장, 과장님에게 가서 인사를 드렸고 직원들의 박수도 받았다.

 

최종 발표날이다.

 

명단을 보니 P의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시험치고 나서 절대 큰소리는 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최종 명단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경솔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38. 교관이 되다.

 

모두 47명이 특별승진시험(特別昇進試驗)에 합격했다.

 

친지, 동료, 상사는 물론, 여러 곳에서 전화나 전보로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다.

 

나는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제 나도 관(官)자를 달았다는 기쁨에 한동안 들떠 있었다.

 

'83년7월1일자로 세무공무원 교육원 교관으로 발령이 났다.

 

존경하는 '정왕선'님이 승진을 하셔서 교육원장으로 와 계셨다.

 

그 분과는 인연이 참으로 묘했다.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시는 분을 세번씩이나 만나 모시게 된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으며, 그분을 좀더 알고 좀 더 배우라는 하늘의 계시(啓示)인 것 같았다.

 

강의(講義)를 해야 된다니 정말 큰일 났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는 물론, 이야기를 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고 더군다나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이 잘 나오지 않고 더듬는 습관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반(班)을 맡았다. 첫 강의시간, 나는 어떻게 그 시간을 마쳤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단에 오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시간 내내 교제만 그냥 읽어 내려간 것 같다.

 

다음 시간도, 다음 날도, 다음 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나의 인기는 정말 한심한 정도에서 벗어나 형편이 무인지경인 수준까지 내려갔다.

 

교학과에 내려가서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써놓고 간 '설문지'를 읽어 보니 정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게 뭔 교관인감?'

 

'참으로 지루하고 듣기 싫은 부가세반이었습니다.'

 

'국세청에 가르칠 사람이 그리도 없습니까?'

 

'그게 뭔 교관인감?'

 

'참으로 지루하고 듣기 싫은 부가세반이었습니다.'

 

'국세청에 가르칠 사람이 그리도 없습니까?'

 

그 설문지가 나에게 '너 임마! 정신차려! 이렇게 해서는 안돼!'라고 일깨워줬고 호된 꾸중과 질책으로 오히려 오기가 나게끔 해 줬다.

 

나는 그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人氣)가 있었던 다른 교관의 강의를 스피커를 통해 들었고 나름대로 강의방법에 대한 연구와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깨달았다.

 

우리 직원은 성인(成人) 들이기 때문에 학습은 스스로 하는 것이며, 다만 교관은 핵심을 짚어주는 역할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수업 중에 잠을 못 자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날 밤에 공부를 많이 했는지 하숙방에서 고스톱을 쳤는지 졸고 있는 교육생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교육시간에 졸고 있는 교육생이 몇 사람만 있으면 그 시간은 수면시간이지, 교육시간이 아니다.

 

나는 강의시간 시작때 진한농담으로 집중을 시키고 시간 중간에도 분위기가 산만하다고 생각되면 교재 내용과 관련된 재미난 얘기를 했다. 그리고 딱딱한 세법용어 대신 쉬운 용어로 바꿔 설명했다.

 

교육원에 온지 6개월쯤 될 때에는 인기(人氣)있는 교관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게 됐다.

 

이제는 교단에 올라가면 교육생들의 행동도 보이고, 한사람 한사람의 눈빛도 읽을 수가 있고, 분위기를 파악할 수가 있게 됐다.

 

원장님이 찾으셨다.

 

"박 교관! 역시 내가 사람 볼줄 알지?"하시며 흐뭇해 하셨다.

 

39. 무모한 시도

 

원장님이 아무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을 보니 어제 치룬 운전면허 시험에 또 낙방을 하신 모양이다.

 

벌써 다섯번째다.

 

"그게 뭔 재미난 일이라고 자꾸 치십니까?"

 

퇴근하시는 원장님께 물었다.

 

원장님은 좀 창피하셨던지 "이 사람아! 그게 그리 쉬운 줄 알아? 자네도 몇번 쳐야 될 거야!"하신다.

 

그래서 내기를 했다.

 

내가 한번에 합격하면 저녁을 사주시고 떨어지면 내가 술을 사드리기로. 그날 오후 퇴근길에 방배동 우리 집 부근에 있는 운전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고 하루에 30분씩 교습을 시작했다.

 

일주일 뒤에 면허시험을 친단다.

 

30분이 지나면 운전학원 아가씨가 시간이 다 됐으니 차에서 내려오라고 마이크로 떠들어댄다.

 

운전석에 올라 뭘 좀 하려 하면 금방 끝나버리니 연습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다음날 나는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오징어와 땅콩을 사서 마이크 잡는 아가씨에게 뇌물(?)을 줬더니 약발이 금방 났다.

 

한 시간이 되어도 내려오라는 잔소리가 없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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