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전국교관연찬대회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성남에 있는 한국정신문화원에서 3박4일동안 전국에 있는 각 부처 공무원교육원의 교관들을 소집했다.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정강령인가 뭔가를 발표했는데 그걸 잘 배워서 교육생들에게 교육시키라는 취지(趣旨)란다.
세무공무원 교육원에서는 내가 대표로 참석했다.
사실은 모두들 가기 싫어하니까 또 내가 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냥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인 '근면, 자조, 협동'을 그대로 써도 될 것을 정권이 바꿨다고 다시 만들었는데, 모두 아홉가지인가 열두가지인가 하여튼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배우러 정신문화원으로 끌려갔다.
우리 국세청도 마찬가지다.
청장이 바뀔 때마다 '국세행정 기본방향'을 다시 내놓는데 사실 문구만 바꿨지 그게 그거다.
'공평세정', '민주세정', '바른세정', '밝은세정', '선진세정', '정도세정'….
이렇게 청장 바뀔 때마다 새로 만들다가는 10년, 100년, 300년 뒤에 취임하는 청장님은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선임(先任) 청장 때의 것이 괜찮으면 그냥 쓰고 좋은 것은 좀 아껴 놓았다가 후임 청장이 쓰도록 배려도 좀 했으면 한다.
오랜 세월 뒤에는 쓸 것이 바닥나서 아마도 무지개세정, 햇볕세정, 천둥번개세정, 단비세정, 작살세정, 공포세정 등등.
그런 것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여간 우리는 깨끗한 숙소와 풍성한 식사대접을 잘 받고 3박4일간의 교육을 마치게 됐다.
수료식 대신에 넓은 강당에서 정신문화원 원장님과 교수진, 그리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정면의 메인 테이블에 앉아 교육생들과 직사각형 모양으로 둘러 앉아 토론을 벌였다.
각 교육원 선생님들인데 오죽 말을 잘하겠는가?
우리는 한목소리로 국정방향이 복잡하다는 점, 정신문화원의 자세, 이번 교육의 목적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비판했던 요지(要旨)는 대충 다음과 같다.
"초상집에 문상 가서 실컷 울고 난 뒤에 상주에게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 것처럼 나흘동안 교육을 받았는데 뭘 배웠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우리 같은 사무관이상 공무원도 잘 모르겠는데 직원들이나 농어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하는가 하면, "정신문화원장님께 묻겠다. '전국교관연찬회'라는데 '연찬'이 무슨 뜻입니까? 토론하라는 겁니까? 교육받으라는 겁니까? 연구하라는 겁니까? 전부 한자(漢字)로 적어놨는데 중국문화를 가르치는 곳입니까? 이곳이…."
또 내가 찍혔다. 정말로 미치겠다.
찍혀버렸는데 어찌하나? 불과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3박4일간 잘 자고 잘 먹고 갑니다만, 다음 기 교육생에게는 커피 대신에 국산차를, 맥주 대신에 막걸리를, 빵 대신에 떡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민족정기를 고양시키는 그런 일들을 좀 해주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삼성라이온스 롯데자이언트, 기아타이거스, 이게 뭡니까?"
실컷 잘 얻어먹고, 잔소리만 실컷 하고, 옷가방 챙겨들고 그곳을 나왔다.
41. 전국교관 강의대회에서 입상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처음으로 각 부처 공무원교육원의 교관을 대상으로 강의(講義)대회를 개최했는데 우리 교육원에서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하고 원장님과 과장님들이 또 고민을 하고 계신다.
희망자가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찍혔다. 정말로 미치겠다.
찍혀 버렸는데 어찌하나? 불과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강의안(案)을 작성해서 그 당시 주임교관이던 '김종상' 과장님에게 스크린을 받아 달달 외우고, 강의에 필요한 슬라이드를 만들고, 과장님과 원장님 앞에서 발표도 해보며 부산을 떨었다.
왜냐하면 세무공무원교육원, 그리고 국세청의 명예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회 당일(當日) 날이다.
대표선수로 참가한 전국에서 모인 각 교육원 교관들과 방청객으로 중앙공무원 교육원 대강당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내 차례는 점심시간이후 첫번째라 아주 불리했다. 점심시간에 우리 직원과 함께 준비한 대로 방청석 각 의자마다 세금계산서 용지를 나눠 놓았다.
나는 부가가치세제에 있어 영수증 주고 받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거래사실을 예시한 다음 방청객들이 직접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보도록 했다. 가끔 질문도 받아가며 또 질문을 해가면서 30분동안을 무난히 넘겼다.
우수상(優秀賞)을 받은 기억이 난다. 깃발과 함께 부상(副賞)으로 런던대학에 한달간의 연수기회가 주어졌다.
강의는 계속되고 또 원장님의 계획으로 교육원 숙원사업이었던 '세무대백과사전(稅務大百科事典)'의 원고를 런던에 가기전에 끝을 내야만 했다.
나는 사전제작의 실무적 총지휘를 '이'교관님과 같이 맡도록 또 지시를 받았다. 정신문화원 교육은 물론, 강의대회도, 그 일에도 또다시 나를 끼워 넣는데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런던대학에서 받을 강의는 영어실력이 짧아 못 알아듣겠지만, 일상회화는 공부를 좀 해갖고 가야 되지 않는가? 처음 가는 외국이고 그것도 한 달을 거기에 있어야 하는데.
또한 출발하기 전에 원고도 마감을 해놓아야 하는데 그런 나의 개인적 사정을 몰라주는 데는 정말 야속했다. 그래서 좀 봐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국세청에 근무하는 동안 일에 대한 거절은 그게 전부다.
나 대신 훌륭한 세무사전을 만들며 고생한 이 선배님께 미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