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경제성적표는 매우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기본적인 변수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은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참여정부가 그렇게 강조해 오던 분배나 양극화의 해소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배지표는 악화됐고 특히 빈곤가구의 비율은 현저히 더 늘어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청년실업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부동산 가격은 참기 어려운 정도로 올랐다.
이런 성적표를 받은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흔히 정책 운용의 미숙함 또는 아마추어리즘을 많이 거론한다. 좌파적 경제정책운용도 많이 이야기된다. 이러한 평가들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현 정권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시장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들이 만들어내는 또는 결정하는 정책의 내용들은 다분히 반시장적이고 좌파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은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왜 시장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결과들이 나왔을까?
무엇보다도 시장에 대한 몰이해에 그 원인을 돌리고 싶다. 우선 현 정부나 그 측근 인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의 하나가 '시장실패'라는 것이다. 시장이 실패하기 때문에 시장원리를 따르기는 하지만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통적인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장의 실패를 시장의 부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실패라는 용어가 주는 어감은 사실 매우 강하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갖고 있던 재산을 다 날리고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 비참한 상황을 연상하게 된다. 시장의 실패도 그러한 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장의 실패라는 것은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의 결과가 최선의 상태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차선이나 차차선이라도 꽤 괜찮은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교과서는 그러한 상황은 시장의 실패라고 정의한다. 최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잘만 개입하면 개선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시장실패 상황에서 무조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정부의 개입으로 시장이 '실패한'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개입해서 실패하는 소위 정부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보의 부족이다. 시장실패의 원인과 그 치료 방법을 정부나 혹은 다른 연구자들이 제대로 알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노련한 의사는 웬만한 병은 손을 안대고 섭생은 통해 자연적으로 치유되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지만 신출내기들은 성급하게 과감한 치료를 시도하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 몸의 자연치유 능력은 참으로 신비하다. 사실 훌륭한 의사는 이러한 자연적 치유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잘하는 의사이다. 시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시장은 정부의 몇몇 엘리트 관리나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다.
정부실패의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정부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사심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정부의 당위론적 목적은 국리민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더 편안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도 나라가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후세대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정부의 당위론적 목적은 그런 것이지만 정부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그것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이들의 목적이 언제나 정부의 당위론적 목적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정권이든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목표는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 정치권력은 유권자들과 정직하지 못한 게임을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대중영합주의적인 정책이나 공약의 남발이다. 선거에 임박해서 집권여당과 정부가 제시하는 장기 비전은 대부분 이러한 목적의 공약성 선전물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정책 패키지는 대체로 정부 지출의 빠른 팽창을 수반한다. 부담의 증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감추고 지출 확대에 의한 화려한 변화만을 강조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혹에 미혹되지 않는 국민들이 성숙한 국민들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렇게 '성숙한' 국민들로 구성된 국가는 현실세계에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국민들이 좀 더 똑똑해지고 성숙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똑똑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 진정한 민주화의 필요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