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1C 조세문화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

1999.11.01 00:00:00

“制度와 집행에 대한 신뢰회복 선행돼야”


곽태원 교수
저자약력
-하바드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공공경제학회 회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우리가 매우 헤프게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문화'라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화라는 말은 알 듯도 하면서 막상 팔을 걷어붙이고 잡으려고 들면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개념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덧붙여 쓰면 그럴듯해 보이고 특히 문화적으로 보여서 사랑을 받는가 보다. 그래서 살벌하게 느껴지는 조세에까지 문화라는 말을 붙여쓰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붙여 써넣고 보니까 조세도 한결 문화적으로 보이고 교양있어 보인다.

문화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사회적^지적 형성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사회에 유전되어오는 행동양식이나 예술 또는 지적활동을 총칭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떤 계급이나 사회의 사회적 또는 예술적 스타일을 문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문화라는 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 힘들지만 우선 행동양식이나 태도 등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고 또 그것은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사회 그리고 시기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조세문화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 본다면 이것은 어떤 특정한 사회가 어떤 기간 동안 가지고 있는 조세에 대한 태도와 반응양식 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문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분명 우리는 매우 왜곡된 조세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왜곡된 조세문화 때문에 다시 제도가 왜곡되고 그것은 다시 문화를 왜곡시키는 악순환을 경험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조세, 나아가서 재정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조세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가야 할 것인가?
우선 바람직한 조세문화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세문화도 문화이기 때문에 독창성이라든가 미학적인 특성, 도덕적 특성 등 문화를 평가하는 여러가지 척도들을 적용하여 그 바람직한 특성을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세문화의 바람직한 특성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조세문화의 독창성이나 예술성 등을 따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조세문화란 그것 때문에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이 가장 작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조세문화가 어떠한 사회적 비용을 가져오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자.
가장 대표적인 조세문화 왜곡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율게임 상황을 통해서 이것을 생각해 본다. 정직하게 납세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을 때 조세당국은 세수확보를 위해서 세율을 더 높이게 되고 세율이 높아지면 정직한 납세자들만 더 큰 부담을 지게 되기 때문에 정직한 납세자들의 수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난다.
정직한 납세자의 수가 준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조세문화가 더 확산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조세당국은 세율을 더 높이게 되고 정직성은 더 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조세당국과 납세자들간의 불신은 물론 사회 계층간의 불신과 반목의 골이 불필요하게 깊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다행히 8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과감한 세율의 인하를 도모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비교적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조세문화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바로 당국과 납세자간의 불신이 아직 충분히 낮은 수준에 있지 못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조세제도의 불공평성을 필요이상으로 증폭시킨다. 제도 자체를 완전히 공평하게 만들기도 어렵지만 만들어진 제도를 공평하게 시행하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세율게임에 의해서 과도하게 세율이 높아진 경우 제도상의 불공평성과 실제 시행결과의 불공평성은 더욱 큰 괴리를 갖게된다. 더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불공평은 정직성을 처벌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도덕성의 문제까지도 가지게 된다.
또한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납세자와 조세당국간의 조우는 피차를 매우 피곤하게 만들며 유쾌하지 못한 만남이 되게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은 GDP를 직접 낮추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행복도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사회적 비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상호신뢰수준이 낮고 그것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의 원인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당국이 얼마나 절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접촉사고가 나면 왜 길에다 차를 세워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험한 말을 써가면서 싸우는가? 이것을 우리 국민들의 잘못된 문화나 태도 때문이라고 넘겨 버리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싸우기를 좋아하겠는가? 싸워서 부당한 이득을 얻겠다는 것인가? 왜 싸워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치안당국이 공정한 판결을 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위수단으로 싸우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얼마나 피곤하고 또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인가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공부문의 노조들이 왜 준법투쟁이라는 이상을 투쟁을 해서 당국을 곤란하게 만드는가? 준법이란 법대로 한다는 것인데 그대로 하면 무언가 안되게 되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문제인가? 그러나 그러한 제도나 법규들이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에 준법투쟁이라는 난센스가 존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조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제도나 집행당국에 대해서 최소한의 신뢰를 국민들이 가지고 있다면 소위 조세문화의 왜곡이라는 문제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납세자들의 왜곡된 문화를 탓하기 전에 제도와 행정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왜곡된 문화 때문에 제도나 집행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차단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전략적인 포인트가 어디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납세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납세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납세자들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홍보 내지는 교육활동을 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엄벌에 처함으로써 일벌백계의 효과를 도모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더 전략적인 분야는 제도와 집행의 정상화라고 강변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잘못된 조세문화는 일제의 수탈적인 조세 제도와 집행 때문에 얻은 상처 내지는 후유증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없지 않은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의 납세자들은 대부분 일제치하에서 그 수탈적인 세금을 납부한 경험이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미 반세기 이상 지난 일을 탓만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오늘의 조세문화에 대한 책임은 지난 50년 동안 이 땅에서 운영되어 온 대한민국의 조세제도와 그 제도를 운영해 온 대한민국 정부당국의 몫이다. 설사 일제치하에서 얻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50년이 흐르는 동안 그것을 치유하지 조세당국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조세문화의 교정은 바로 이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믿는다. 21세기가 다 지나도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다. 제도가 상식에 부합하게 되면 그에 대한 반응이나 태도는 당연히 상식에 부합하게 되어있다. 집행당국이 일관성 있고 공정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이나 정치지도자들이 납세자들을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적으로 속아넘어갈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세제도와 그 집행에 대한 불신이 줄어든다면 납세자들의 반응과 태도는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21세기의 조세문화는 매우 거창한 구호로 개선되거나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식에 부합하는 제도 그리고 그 제도의 성실하고 일관성 있는 집행 등이 선행되면 우리나라의 조세문화는 선진국의 것에 전혀 손색이 없는 멋있는 것으로 정착될 것이다. 우리 백성들은 원래 선량하고 신사적인 문화민족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조세제도나 그 집행의 개혁에서 더 나아가 거둔 돈을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 아껴쓰는 정부의 모습이 보여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부 돈은 `눈먼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거나 일반국민들이 정부당국은 예산을 함부로 낭비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세금을 내는 것이 매우 아까워질 뿐 아니라 탈세 등 범법행위를 하면서도 의적 행위를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조세문화의 더 중요한 주체는 납세자들인데 그들은 `왜 당국에만 짐을 지우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세문화에서 문화는 그릇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러한 반문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알맹이가 바로 되면 그 그릇도 바로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와 집행의 신뢰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신뢰회복이란 매우 높은 차원의 요구가 아니다. 상식에 부합하고 일관성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박정규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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