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날 현상공모 주부세금수기 입상작]금상 수상작

2002.07.15 00:00:00

아들의 편지 - 최 영 숙


세금낼 돈 없으니 결손처리로…
신용을 생명처럼 여기시던 아버지
파산자가 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


난해, 저의 남편은 1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의 부도로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IMF이후 기업들의 연쇄 도산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내 남편의 직장만은…'하고 굳게 믿어온 터라 저와 저희 가족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보다 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남편의 상심을 우려해 우리 모두는 애써 태연한 척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간 남편은 말을 잃었고, 저 또한 그런 남편의 눈치만을 살필 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남편은 술을 한잔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술상을 앞에 놓고 한참을 우두커니 먼곳만 바라보던 남편은 몇 잔의 술을 연거푸 마시고 난 뒤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말야…,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원들이 회사의 채무에 보증을 섰거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가 전에 마련해둔 땅을 담보물건으로 제공했었지…, 그런데 회사가 부도났고…, 지금 대출금에 대한 상환기일이 많이 지나서 조만간 우리 땅에 대한 경매절차가 진행된다는 거야…."

남편은 그 다음 이야기를 잇지 못하고 또 몇 잔의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보…, 미안하지만 그 땅을 고스란히 뺏기기보다는 급매처분을 해서라도 얼마간은 찾아야 될 것 같아…"

물이 앞을 가려 반백의 남편이 더욱 초라하고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며 남편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우리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체념과 함께, 20여년전 부모님의 도움과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갖고 싶은 것 갖지 못한 채 어렵게 돈을 모아 마련해 두었던 땅을 팔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보다 더 늙으면 조그만 집이라도 짓고 텃밭이라도 붙여 먹겠다는 각오로 셋집을 전전하며 마련해 두었던 땅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며칠후, 우리 부부는 시세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급하게 땅을 팔아 남편 앞으로 되어 있는 회사의 부채를 정산했습니다.

결혼후 10여년간을 야채행상을 해 오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저와 50이 넘어 직장을 잃은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저 한숨만 쉬며 회사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경영주만을 원망하는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살 수 만은 없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후였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을 빼서 조금 싼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 남은 돈으로 장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남편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터여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만 반문할 뿐 반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아들은 군대에 가 있고, 딸아이 또한 취업을 나간 상태여서 단칸방으로 이사를 한다 해도 우리 가족에게 당분간은 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하는 그 날까지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을 하면 얼마간의 안정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 다음날부터 시내의 상가지역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우리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담한 치킨집을 하나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른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 청소를 하고 배달을 하는 등 의욕적으로 일했습니다. 저 또한 튀김 기름에 손을 데면서도 이를 악물고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희 지역에 있는 세무서에서 남편 회사의 채무변제를 위해 우리가 지난번 판 땅에 대한 '양도소득세' 납세고지서가 날아 왔습니다. '2천800만원을 내라'는 그 고지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세무서로 찾아가 우리의 딱한 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채무의 변제를 담보하기 위하여 자산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일정한 요건을 갖춘 계약서의 사본을 첨부하여 신고하는 경우에는 양도로 보지 않는다'는 '양도소득세법시행령'을 찾아내는 등 세금과 관련된 법령집과 세금교육 책자 등과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저 또한 더 이상은 일할 의욕도 없어졌고,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격려하며 '어떤 방법이라도 찾아 낼 테니 기다려 보라'고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저의 딱한 처지를 듣고 격려를 했고, 또 이해를 한다면서도 세금 관계에 대한 별다른 상식들이 없어 제게 흔쾌한 답변을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이 저를 찾아와 "재산이 정말 없으면 결손처리를 신청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결손처리?'

저는 나중에서야 '납세자가 파산이나 부도 등으로 세금을 낼 수 없을 경우 결손처리로 납부의무를 면제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종전에는 국세기본법상 결손처분이 된 때에는 국세긿가산금 등의 '납부의무'가 소멸되었으나 결손처분의 경우에도 국세 등 납부의무는 소멸되지 않는 것으로 동 법이 개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날 밤 저와 남편은 "지금 당장은 돈이 없으니 결손처리쪽으로 방향을 잡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세무서를 찾아가 "정말 세금을 낼 돈이 없으니 결손처리를 해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때 한 직원이 "결손처리를 할 경우 국세청은 전국 세무서 별로 매분기마다 결손을 낸 사람들을 골라 이들이 취직을 했거나 신규로 부동산을 취득하는 등의 사유로 세금을 낼 여력이 발생했을 경우 즉각 세금을 부과, 고지를 하게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세금 빚은 무덤까지 따라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렇게 고민만 쌓여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군에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습니다. 녀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것을 제 동생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녀석이 휴가를 나와 있는 동안에도 우리 부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들 녀석은 귀대를 하게 되었고, 휴가를 다녀간 며칠후 우리 부부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니, 세금은 나라를 유지하며 발전시켜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국민의 의무로 정하고 있는 것이구요.

아버지 어머니, 납세의 의무는 제가 요즘 행하고 있는 국방의 의무와 제 동생 영주가 하고 있는 근로의 의무, 그리고 우리들이 받았던 교육의 의무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입니다. 우리들이 보다 쾌적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보장이나 사회간접자본의 수준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에 필요한 세금을 내는 일을 회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두 분이 너무나 힘드시니까 '파산선고'다 '결손처리'다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들이 어렸을 때에는 우리 집의 형편이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야채상을 하시느라 하루종일 시장에 계셨고, 아버지 또한 회사에서 막노동의 고통을 이겨내셔야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단 한번도 이른 저녁을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남매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을 한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이 한없이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다시 한번 그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신용을 생명처럼 받들어 오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금을 내지 못해 '파산자'가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집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휴가중에 가게의 한켠에서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랑스런 부모님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지금 살고 계신 집을 처분해서라도 세금을 내시기 바랍니다. 제대하면 반드시 두분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우리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저 또한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니 꼭 세금을 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들 영환 올림"

리 부부는 아들 녀석의 편지를 보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듯한 아들 녀석의 편지가 기특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올바른 일을 망설이며 부정하려 했던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 우리에게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너희들이 있다'

아들의 편지를 받고 난 다음날, 우리는 다시 한번 세무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탈세자가 되지 않고 떳떳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세무서 직원은 친절하게도 '양도소득세의 분납'에 대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거주자의 예정신고 및 확정신고시 자진납부할 세액이 2천만원이하인 때에는 1천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납부기간 경과후 45일이내에 나누어 낼 수 있으며, 납부할 세액이 2천만원을 초과할 때에는 그 세액의 100분의 50이하의 금액을 납부기한 경과 후 45일이내에 나누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납부할 세액의 일부를 나누어 내시려면 당해 과세표준신고 및 자진납부계산서에 나누어 낼 세액을 기재하여 그 신고기한까지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신청하시면 됩니다."

금을 납부하기 위해 지금 저희는 살던 집을 내 놓았습니다. 이제 얼마 후부터 우리 부부는 가게에 붙어 있는 다락방에서 새우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실한 납세의 소중함과 납세도의심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그리는 꿈을 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힘차게 새벽을 열 것입니다.


장희복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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