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鐵活仁]옛날의 주막풍정

2001.06.18 00:00:00

-낭만도 있었고 희화도 있었다



장재철(張在鐵) 시인
本紙 論設委員

옛날 주막은 대중의 식당이요, 서민의 `빠'였다.

시골에 가면 큰 길목에는 으레 주막이 있어서 가까운 마을사람과 길손의 허기를 채워주고 갈증을 풀어주었다. 주막에는 屋號도 없고 그래서 간판도 없었다.

그래도 옛날 주막에는 낭만이 있고 술파는 주모에게는 순정이라는 게 있었다. 푹푹 삶은 여름철 마포잠방이에 땀냄새 물씬 나는 시골농부에게는 단 하나있는 휴식처이며 유일한 사교장이 마을가 길거리의 주막집이었다.

주막이라고 무슨 자기집과 다를 것도 없다. 헛간에서는 두엄냄새가 나고 방에는 모기떼가 욍욍거린다. 굳이 제 집과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연기에 그을린 방구석에 허름한 경대가 놓여 있고 거기서만 솔곳이 값싼 지분냄새가 풍길 뿐이다.

주모의 나이는 너무 젊고 어려서도 안된다. 바보만 아니고창부타령이나 권주가 정도를 흥얼거릴줄 알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주모는 어쩌다 팔자가 사나워서 비록 `路柳의 신세'는 되었을 망정 心性이 고운 여인이 많았으며 어쩌다 사내를 알면 흠뻑 정을 주되 그것을 돈으로 사고파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 면서기나 마을 구장(이장)이 시골 유지라는 지칭을 받았는데 주모들의 `기둥서방'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그 이유는 그들에게서 무슨 경제적인 도움을 얻기 위하기 보다는 일종의 빠덴(보호자)으로서 그들의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권세있는 그들(?)은 사귀는 동안 주모가 나이가 들고 싫증이 나면 한마디 말도 없이 떼어 버리고 시치미를 떼지만 그녀들은 조금도 원망하는 법도 없이 말없는 孤節을 지키며 그대로 늙어갔다.

그리고 먼 옛적 왕조시대에는 주막에 들어 돈만 많이 낸다고 아무나 특실(안방)에 들지 못한다. 사회적 신분이 낮으면 하루밤에 천금을 내도 마루방 신세요, 그래서 양반 중에서도 고관대작의 먼 일가 친척이라도 거드름만 잘 피우면 특실손님이 될 수 있고 이런 손님이 또 더 있으면 그런 상황에서 주막집 주인은 방값, 술값은 둘째요, 손님 눈치보기에 넋이 빠진다.

`주막 주인놈 게 있느냐. 저 안방 아랫목에 거들먹거리는 자는 어디 사는 누구이기에 감히 내 앞에서……. 냉큼 알아오너라.'

이렇게 해서 시비가 붙으면 상전은 앉아서 눈만 부라리면 그만이지만 따라온 하인끼리는 저번 누구처럼 身命까지는 몰라도 망극한 성은에 보답하기 위하여 육박전을 벌이는 충성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놈아 거기 계신 우리댁 샌님은 ○○대감님의 외삼촌 되시는 분이시다', `뭐라고? 우리 나으리께서는 △△대감의 칠촌 조카이시고 사돈댁이 바로 아무게 대감님의 사돈네 팔촌이시다.'

이렇게 해서 우리 李朝 오백년은 해가 뜨고 해가 져서 國恥民辱의 날을 맞은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6·25가 가까워지고 현충일이 되어도 별 감회와 비완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이 많아진 것도 어려운 국민경제 못지 않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성만 기자 daejeo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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