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순 시인·서울청 총무과
대퇴부 하얀 뼈를 형광판에 걸어둔 채
노루 한 마리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인공관절을 끼워야 한다
종양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둥 엄청난 말들이
노루의 검은 두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고
아내를 빗장 걸어 넘어뜨린 후
겨울 아스팔트 바닥에 나를 패대기쳤다
고3녀석이 하라는 공분 안하고 축구를 하냐
덕분에 군대도 안 가게 되고 잘 되었구먼
웃음을 지으며 주먹으로 툭툭 노루 가슴을 치고 괜찮다, 걱정 마라
팡팡하던 아들의 해병대 꿈은
바람 빠진 축구공이 되어
어둠 깔린 운동장 구석으로 이내 사라지고 만 것일까
수술 서약서의 글씨들이
개미떼로 거칠게 달려들었다
아내는 온 몸 낭자히 뜯겨 자지러들고
수술실 밖 복도에서 난
달콤한 먹이를 빼앗긴 들개처럼 서성거렸다
담배 연기 때문에 자꾸 목이 말랐다
두 달 전,
말로만 듣던 지옥엘 다녀왔다
겨우 두 놈 키우기가 이럴 진데
셋방 가득 올망졸망 오글거리던 새끼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지옥 방들을 다 거쳐오셨을까
가방을 등에 달고 학원엘 간댄다
업어치기 한 판 메치고 함께 뒹굴고 싶으나
한 달만 더 끙끙 참기로 한다
밖을 나서다 뒤돌아보는 모습, 많이 본 듯 낯익은 얼굴
나인가? 보면 아내인 듯도 한
목발을 짚고 문 앞에 선 노루 한 마리!
오관록 기자
gwangju@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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