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 隨筆]친구이야기 20 (만년필)-下

2002.11.11 00:00:00

이운우 경주署


그마지막 대목을 음미해 보면, '벨만씨가 어제 병원에서 돌아가셨대. 그저 이틀 앓았을 뿐이야. 병에 걸린 첫날 아침에 문지기가 아래층 그의 방에서 가엾게도 몹시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를 발견하였대. 그의 신과 의복이 온통 젖어 있었고, 얼음장같이 차드래. 글쎄, 그 무서운 밤에 어딜 갔었을까. 모두들 짐작도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아직 불이 켜져 있는 등불과 끌어다 놓은 사다리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화필과 푸른빛 누른빛이 섞여 있는 팔레트를 발견하였대. 저 창문을 내다보라구. 저 마지막 담쟁이 잎새가 흔들리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꼼짝달싹도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 존시, 저것은 벨만의 작품이거든, 그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밤에 저것을 저기다 그려 놓았어.'     

웬소포가 왔다. 뜻밖에도 그얘가 보낸 국제 우편물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소식도 만나지도 못해 궁금하고 왜 한번도 병문안은 안 올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석이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고동색의 파카 만년필과 함께 애달픈 사연이었다.

'…28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먼 이국 땅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내려 다시 18시간이나 트럭을 타고 남미 오지의 땅 팜푸스에 도착했다고….

의논도 없이 아빠가 일방적으로 농업이민을 신청해 갑자기 비자가 나와 연락도 못하고 졸지에 오게 되었다고. 오기전에 석의 집에 두번이나 갔는데 방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고 했다. 고국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고이 간직하겠노라고. 만년필은 고국에서 산 것인데 석의 열일곱번째 생일선물하려고 했었는데 만나지 못해 대신에 소포로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석이 생각날 때마다 에비타의 Don't cry for me Argentina 듣는다면서 시간이 나거든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그얘가 보내준 만년필로 시내에서 구해온 테이프를 들으면서 밤새워 편지를 썼다. 에바 페론의 일생과 그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더욱더 애잔하고 슬픔에 젖은 음성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석은 결코 울지는 않았다. 대학 노트로 30여장이나 되는 긴 사연은 너무나 순수했던 추억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결국은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되겠지만….
내일은 모든 것을 툭툭 털고 혼자서 걸어봐야지.

'존시'가 감자 수프를 끌어 당겨서 먹듯이….

그얘가 준 만년필은 석에게는 마지막 잎새처럼 생명의 은인이 되리라.


박성만 기자 daejeo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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