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세월(上)

2005.03.21 00:00:00

(원제 : 2004, 2005. 오고 가고, 가고 오고)


오늘 내가 또다시 글을 쓰는 이유.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마치 머리속이 텅 비고 백지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버리는 느낌, 지난 한해도 예외없이 뭔가를 추구했었고 구차해 보여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삶이라 여기며 달려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다시 그 자리다.

허무라고 하기엔 조금은 가벼운 듯하고 슬픔이라고 하기에도 낯설은, 그래서 존재의 고독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조금 무거운 듯하고, 그리하여 '여전히 나는 백지상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도피에 다름아닐 터.

나는 지금 도망치고 있다. 실체도 확인되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모습. '내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을 것이라는 예감은 표피적인 감정이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논리적 확증에 가깝다'는 그 사실이 지금 나는 버겁다.

순간적인 상념처럼 스쳐지나는 것도 아니면서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스산해지는 것은 분명 이 겨울의 추위 때문만이 아닌 게다. 비관일까? 오해 마시라. 미리 말하건대 그런 마음상태가 우울에 가까울지언정 과히 기분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분간은 마음가는 대로 자신의 솔직한 내면의 느낌 속에 침잠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하지만 이 생각 또한 지나친 낙관이 아니겠는가…. 내 속에서는 비관과 낙관의 지리한 공방이 계속된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있을까?'라고 말한 것은 시인 황지우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까지도 그 상스러움의 천박함으로 값싼 감정의 유희에 다름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글쎄다. 글 나부랭이나 써대는 일처럼 상스러운 것이 있을까?

'문학이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은 다 죽어야 해요'라는 극단적인 언사를 퍼부은 사람은 소설가 김 훈이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일이 없도록 내가 소설을 쓰겠다' 단 두편의 작품으로 전무후무할 수도 있을 문학상에 빛나는 김 훈의 말이 그러하니, 나 같은 사람의 잡스런 글 쓰기 행위란 얼마나 초라한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이런 글쓰기를 했으며, 무엇 때문에 그런 잡스런 행위를 멈추지 않았는가. 그럴수록 나는 더욱 비참해졌던 것이거늘.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겠으므로 이미 상처투성이로 초라해질대로 초라해진 나를 차라리 벌주시라.

벌받은 뒤끝의 위안으로 차라리 비굴하게 다시 설 것이거늘 그때서야 겨우 숨 한번 추스릴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내가 우리 직장에 들어와서 그나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이유라면, 최소한 이런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시간과 자유가 허락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가장 사치스런 욕망의 표출일 수도 있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도 시간과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굶주리며 피토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송구한가.

내가 글을 써 보는 것은 결코 잘 써서가 아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확보했을 뿐이고 내 속에 품은 작은 열정을 분출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부끄러운 나의 욕망에 속지 말기를.

또한 나의 글은 그런 욕망의 표출임과 동시에 온갖 변명의 나열임을 밝힌다. 나는 결코 유능한 사람이 아님에, 조직을 선도하는 종사자도 아니며, 업무집행이 탁월하다거나 국세공무원경력 10년을 훌쩍 넘어서고도 서장급이상의 상을 받은 적도 없다. 당장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나 돌이켜보자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랑스러웠던 점보다는 부끄러운 점이 더 많이 있어왔다.


강위진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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