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날 <<학생세금글짓기대회>> 고등부 금상

2000.02.24 00:00:00

더불어 사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



“현섭이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천진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형. 내게는 스무살 된 정신지체 3급의 형이 있다. 항상 밝은 표정의 형이 요즈음은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인다.
“형이 나보다 먼저 왔네. 오늘도 일 잘하고 왔어?”
집에 들어서자마자 씻기 위해 옷가지를 챙기러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형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현섭아 이거 받아. 형이 월급 타서 용돈 주는 거야.”
“맞아! 오늘이 월급날이라고 했지? 와! 고마워, 형.”
“응, 이따가 누나한테도 줄거야.”
만원 짜리 지폐 한 장……. 피 같은 돈이다.
형은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후원하는 최저생계비 삼십오만원을 받는다. 국민연금 차비 식비 의료보험료를 제하고 나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는 봉급이지만, 형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희망을 준다.

매일 아침 일곱시면 대문을 나서서 저녁 여덟시가 다 되어야 땀에 절은 얼굴로 집에 돌아온다. 오늘도 보람 찬 하루였다는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띠며.
나의 형은 다운증후군 환자다. 돌연변이로 스물한번째 염색체 수가 하나 더 많은 까닭에 나타나는 장애라고 생물시간에 배웠다. 그래서 형은 보통 사람보다 피부가 더 희고, 머리색도 노란 편이다. 양미간이 보통 사람들보다 넓고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가 몽똑하며 새끼손가락이 두 마디인 것도 특징이다.
게다가 키가 작고 뚱뚱한 체형이라 같은 처지의 사람들보다도 움직임이 빠르지 못하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형을 어떻게든 잘 키워보시려고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모두 일반학교를 다니게 하셨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형이어서 어머니께선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셨다. 하지만 결국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시고, 힘들어하는 형을 위해 고등학교는 특수학교에 입학시키셨다.

형이 다니는 은평 복지학교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특수학교인데, 그곳 고등부에 진학하면서 형의 학교 생활은 이전과 달리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직책인 학급 회장을 맡게 되어 기뻐했고, 형보다 더 중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극진히 돕고 보살펴 주는 일도 자랑스러워했다. 일반 중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가기가 싫어서 동네를 빙빙 돌기도 했던 형이, 특수학교에 가서는 하루하루를 아주 재미있어하면서 의욕이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질병이나 불가항력적인 재해로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고아들이나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처럼 스스로는 홀로 서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똑같이 귀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편견과 이기심으로 외면하기 쉽다. 내 자신만 돌아봐도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하여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도와 준 경험이 별로 없다. 도움이라고는 고작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동전 몇 닢을 건네주었던 것이 전부다.

그리고는 `나라에서는 저런 사람들을 왜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오게 해서 여러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세금은 걷어서 뭐 하나?'하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다름아닌 나의 형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복지학교에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일터까지 보장받았다는 사실이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납세 의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어째서 납세가 국민의 4대 의무에 들어 마땅한지 알 수 있었다. 세금이 모이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크고 중요한 일들을 국가가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티끝이 모여서 태산이 되고, 시냇물이 모여서 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세금은 우리 모두를 위해 모으는 공동 저축이다. 오늘의 나라살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내일을 준비하는 예금이다.

현대 사회는 능력에 따라 소득과 신분의 차별화가 심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거나 기술과 정보가 부족해서 뒤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증진되는 것 같은데 그에 비해 경제정의 실천은 오히려 뒤쳐지는 느낌이다. 나라가 균형 있게 성장하려면 반드시 납세를 통하여 정의로운 분배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 정의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더 많은 갈등과 문제에 빠져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만 잘 살 수는 없다.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정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만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거기서 얻어진 소득에 따른 나눔을 주저없이 실천해야만 한다.
사실 나는 형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무척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형을 놀리고 이유 없이 때리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한 녀석이 하교길에 형을 놀리는 것을 보고 코피가 나게 싸운 적도 있었다.
형과 같은 사람들은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고, 움직임이 둔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말이 잘 안돼서 자신의 의사표현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죽을 때까지 부모나 형제가 돌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다행하게도 형은 말도 잘하고 일상생활에 적응도 잘해서 간단한 사회생활은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기업체로 실습을 나간다며 긴장하던 형의 모습이 생각난다. 일산에 있는 색인 공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달여 동안 열심히 훈련을 받고 이제는 정식으로 사원이 된 것이다. 취직이 확정된 날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형이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에 감격해서이다.
형이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띠고 월급 봉투를 들고 집에 돌아오는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감사'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나면서부터 남들 따라가기 어려워서 힘들고 외로웠던 형이지만, 우리 국민의 귀중한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 교육하는 특수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일터까지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들의 배려를 받으며 행복하게 일하고 있음이 정말 고맙다.

안정된 선진 복지 국가는 국민 모두의 정의로운 납세의무 실천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은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여 세금내기를 기피하는 국민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기회를 국가라는 큰 우산 속에서 보호받으며 살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선진 국민이 되려면 앞장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스스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과 우리 모두의 생명보호와 보장된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성실한 납세를 의무가 아닌 특권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런 꿈을 가져 본다.
내가 이 다음에 성인이 되어서 납세의 의무를 감당할 때가 되면, 우리 나라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 서열에 오르고 싶다. 록펠러나 카네기처럼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성공의 결과를 나만을 위하여 쓰지 않고 국가 사회로 환원시켜 이웃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일에 재투자할 것이다.
정직하고 바른 납세는 우리 나라를 진정한 선진 복지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제일 든든한 초석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정규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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