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합격수기] 5개월 반의 여로 - 下

2000.10.30 00:00:00

“반드시 기본원리 이해해야 문제난이도따라 시간배정을”


매일 매일 과목별로 계획표를 만들어 공부한 시간과 양을 적었다. 독서실에 책상을 두 개 빌려서 옆에 공부하기 싫어하는 고2 아들을 억지로 앉히고 같이 공부를 했다. 가끔씩 공부하다 안보이면 동네 오락실을 다 뒤져 억지로 끌고와서 다시 앉혔다. 그러다 보면 무척 피곤했다.(그래서인지 요즘은 성적이 굉장히 올라서 기분이 좋다) 2월까지는 동네 테니스장에서 점심후 30분씩 레슨을 받고 돌아와 2시간씩 낮잠을 잤다. 학원강의 제외하고 평균 매일 6시간은 공부한 것 같다. 매일 저녁 2시에 아파트 계단을 올라오면서 `절대 두번다시 이 공부 안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셋째, 반드시 기본원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처음 약 4개월 동안은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이라도 틀리거나 의심나는 부분이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꼭 물어봤다. 처음에 진도는 늦었지만 일단 기본원리가 이해되니 공식이 자연스럽게 암기가 됐고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각 파트별로 한 문제만 풀어도 유사한 다른 문제는 수월하게 풀 수 있었다. 4월이 지나니 책을 보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실력이 향상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가회계같은 경우 김某 회계사 예상 50문제를 단 하루만에 볼 수 있었다. 책도 본문은 읽을 필요도 없이 문제만으로 충분했다. 각 과목별로 10번 정도 본 것 같다.

넷째, 시험장에서의 테크닉이다. 내 앞자리는 결시가 되어 앞 책상을 당겨 내 책상과 붙이니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지를 받으면 먼저 풀기전에 일단 끝까지 한번 눈으로 보는 곳이 좋다. 올해 세법 최저한세 15점짜리 문제가 맨 뒷장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미처 보지못해 풀지못한 사람도 있었다. 

5월말이 되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잠이 엄청 많아졌다. 왜 그렇게 몸은 피곤하고 잠은 쏟아지는지. 어떤 때는 한번 자면 오후 3시까지 잔 적도 있었다. 단지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보약도 먹었다.

드디어 시험날. 1교시 문제지를 받아 본 순간 온몸이 떨리고 흥분됐다. 원가회계 20점짜리 문제가 내가 그토록 자주 봤던 김某 회계사 책 문제와 요구사항과 제품이름까지 거의 똑같았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야! 합격이다' 감독관이 옆에 다가와서 조용히 보라고 했다. 조그마한 연못에서 대형 잉어를 낚는 기분이었다. 실수하지 않게 천천히 풀어 나갔다. 재무회계 30점짜리 문제는 이종자산의 교환을 묻는 계산문제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기업회계기준을 중심으로 아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썼다. 어차피 반만 맞으려 했으니까. 세무회계는 조정자료 1·2·3번 문제는 다소 양이 많아서 맨 나중에 풀기로 하고 일단 마지막 최저한세를 먼저 풀었다. 미리 예상을 했던 것이라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맨 아래 10번 문제부터 거꾸로 풀어나갔다. 그러니 조금 시간이 남아서 간단한 것만 검산할 수 있었다.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험생들 속에서 겨우 5개월 반 공부한 내가 도저히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내일 모레 나이 50을 바라보는 내가 갑자기 막 눈물을 쏟아냈다. 왜 울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집사람이 술을 사준다고 해 가까운 술집에 가서 원 없이 마셨다. 시험후  테니스도 치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갔다. 그러나 막상 발표날이 다가오니 마음이 심난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발표전날 한강다리 위에 갔다. 다시 공부를 한다고 해도 더 이상 실력이 좋아져서 합격한다는 자신이 없었다. 만약 떨어지면 다시 회계원리부터 들으리라 10월 공부계획을 세워봤다. 그런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합격이란다. 크게 실수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뜻밖이었다.

5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새로운 것의 시작에 다소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보니 아직 철이 덜 들었나보다. 하지만 풍요와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뭔가 조그마한 것을 거둬들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넉넉해진다. 〈끝〉


박정규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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