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국세청 비화〈9〉-① 범양상선 세무조사

2000.04.10 00:00:00

“韓 사장은 인간이 되시오. 천벌을 받습니다.”

'87.4.19 오후 3시50분경 국내 기업랭킹 27위로 최대 선박회사인 범양상선그룹 박건석(朴健碩) 회장(당시 59세)이 서울 중구 을지로1가 101 두산빌딩 10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 화장실 창문에서 투신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내용 중 핵심부분이다.

유서내용 중 핵심부분이 회사내의 전문경영인인 한상연(韓相淵) 사장과의 갈등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사건은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져 주며 온통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또 유서는 “(회사 간부들을 지칭하며) 너희들은 회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깊이 반성하고 새 사람이 돼 주기를 바란다”, “사리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악용하는 전문경영인은 물러나야 한다”, “과거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일치단결해서 이 난관을 극복하고 빛나는 범양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건투를 빌며”라는 내용도 담고 있어 회사 간부들의 무사안일도 꼬집었다.

朴 회장은 가족들에게도 유서를 남겼다. “나는 한상연(韓相淵)이 계획한 덫에 치였다. 명예롭게 남에게 폐가 되지 않게 살려고 했지만 끝을 이렇게 맺자니 한스럽다. 韓은 잔인하고 교활한 자라는 것을 2~3년전부터 알고 최선을 다하여 원만히 지내려고 했지만 이번 조사로 끝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많은 재산을 회사로부터 가져갔으며, 교묘한 방법으로 가지고 있다. 나는 남을 해치는 성격이 아니지만 韓은 이 사회에서 용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용의 요지였다.

이 사건의 초기핵심은 굴지의 재벌총수가 왜 자살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문경영인과의 불화, 당국의 조사로 인한 자신에 대한 압박이 핵심이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당시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회사는 점차 어려워짐에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당국의 조사는 진행되고, 또 자신의 심복이라고 믿어 왔던 전문경영인과의 갈등마저 심화되자 `재계의 신사'로 불리는 등 명예를 중시해 오던 朴 회장으로서는 명예와 목숨을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朴 회장의 유서내용 중 당국의 조사는 국세청의 조사로 알려졌고, 세간의 이목은 온통 국세청으로 쏠리게 됐다.

朴 회장의 자살로 일이 일파만파로 번짐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사상 유례없이 1주일만에 모든 조사를 마치고 사상 최대의 외화유출사실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이는 국세청이 통상의 세무조사 기간에 비추어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그 동안 조사해 온 장영자 이철희 사건, 명성그룹 세무조사 등 대부분의 사건이 발생이후 세무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범양의 외화유출에 대한 세무조사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사전에 냄새를 맡아 은밀히 내사를 진행했고 대부분의 혐의를 포착, 확보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당시 국세청이 적발해 낸 1천6백44만달러라는 외화 유출액은 지난해 한진그룹의 조사에서 적출해낸 금액보다는 적지만 당시의 우리 나라 경제상황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87년 범양사건은 당시 우리 나라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 만큼의 외화를 해외로 유출했다는 점과 조사착수 당시 박건석(朴健碩) 회장의 투신자살 등으로 반향은 한 마디로 대단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당시 국회 재무위원회에서까지 국회차원의 대책이 논의되는 등 국세행정사의 대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우선 당시 국세청이 발표한 조사결과부터 살펴보자.

세청의 범양상선에 대한 조사는 이 해 2월보다 훨씬 이전인 '86.11월경부터 내사(보통 6개월정도 진행됨)가 시작돼 4월16일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조사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돼 국세청은 4월27일 조사결과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처럼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빠르게 진행된 것은 조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19일, 조사의 핵심인물인 朴 회장이 투신자살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국세청은 27일 조사결과, 범양상선 박건석(朴健碩) 회장(당시 59세)과 한상연 사장(당시 52세)이 지난 '79년이후 지금까지 1천6백44만달러(약 1백38억원)의 외화를 빼돌렸으며 이들의 국내외 개인재산만도 朴 회장이 3백44억원, 韓 사장이 52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밝혔다.


서주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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