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시인, 통영서)
고요한 강물위에 별들이 출렁이고 별을 부르다 지친 친구들의 목소리로 저 강가 하얀 모래언덕 위에 달빛 머금은 삐비꽃처럼 대롱대롱 맺히도록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이 지경이니 제일 먼저 입이 닫히고 마음은 더이상 열리기를 거부한다.
이슬 같은 소주잔을 맞대고 아득한 옛 추억을 만들며, 또 젊은 날의 무용담도 듣고 그래야 되는데 술은 절대 금기하라는 의사의 말에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그날 따라 왜 그렇게 나 자신이 못나 보이는지 왜 이렇게까지 절제없이 몸관리를 했는지 스스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10시가 넘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착해 친구들이 하나 둘 차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모두 밖에 나가 서로 얼싸안고 30년만의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래도 이런 고향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친구들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전야제는 예상보다 많은 70여명이 모였다. 전야제가 너무 지나치면 본 행사인 내일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걸 어떠랴.
이야기꽃은 밤새도록 그칠 줄 모른다. 나 또한 합류하고 싶었지만 내일 행사에 이런 저런 준비도 해야 하고 술 때문에 이번만은 참기로 했다. 모두 유년의 이야기로 커다란 벽을 허물어 성을 쌓으려는가 보다. 친구들의 이야기는 용암산의 병풍바위를 만들고, 때로는 서작골 부드러운 바람이 돼 불어와 고락-뜰을 지나 속금산 금모래 위에 반짝이다 오-뜰에 큰산을 이뤘다.
30년전의 역사를 어떻게 하루저녁 시간으로 메울 수 없지만, 그래 취하라 술에 취하고, 지난 그늘진 세월에 취하고 또 우정에 취해 보아라, 그래서 우리들의 노래, 우리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보자.
오늘밤은 친구들의 우정만큼 고향의 향기만큼 푸르게 익어간다. 오늘따라 예성강 푸른 물결도 힘차게 흘러간다.
언덕은 강을 끼고, 강은 풍경을 껴안고 먼바다로 돌아갈 꿈을 꾼다. 술 같은 저녁별이 빚은 자리 아래 바람은 구름을 송석정에 불러 앉혀놓고 홀로 산모퉁이 돌아간다.
그래 우리는 한번의 사랑으로 모두 떠나 보냈고 또 한번의 사랑은 서로를 그리워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긴 꼬리를 내리고 살랑거리는 6월의 바람은 폐 깊숙이 아련한 고향 흙내음이 돼 파고 든다.
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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