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제비꽃 향기(동창회 그리고 고향)③

2005.12.26 00:00:00

김정호(시인, 통영서)


아침안개가 들판에 놀 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일렁이는 기쁨을 안고 보랏빛 연기처럼 자욱한 그리움으로 또 하루를 연다.

해는 용암산 위로 붉게 솟아 오른지 이미 오래. 11시가 되자 여기 저기서 30년전 아니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인 아득한 옛 고향의 이름표를 달고 모여든 친구들은 100여명에 이른다.

돌정리, 가숭굴, 화실, 인동굴, 광대왈, 우메기, 회아리, 다만, 안섶뫼, 바깥섶뫼, 못골, 한재, 템부, 갈리 그리고 웃고랑. 들어만 보아도 정들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이고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30년전 우리가 이 고향을 떠나기 전에 부른 노래, 또 '80년 5월 이 자리에서 함께 부른 노래도 오늘 햇살처럼 뜨거웠다.

그래,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쯤이었을까. 까맣게 타버린 가슴 부등켜 안고 피맺은 울음이 되살아 나 젊음을 불태운 우리들이 아니었는가? 우리 우리는 애 끊은 저 해처럼 어머니의 심장을 녹여 살아온 그런 자식들이었다.

그 외침 그 함성은 예승산 바위 같은 침묵으로 용암산 푸른 정기로 하늘을 울리는 찬란함이 아니었느냐. 우리네 역사가 아니었느냐. 이제 더이상 아프다 소리치지 말자.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젊은 날, 그 날이 다시 온다면 다시는 비겁한 도망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전국에서 천리길을 달려온 친구들, 고향이란 이런 거다. 친구들이란 다 이런 거다.

우리들의 유년은 늘 가난했다. 초등학교 공부는 구구단과 국민교육헌장만 외우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소풍 갈 때나 겨우 먹을 수 있는 사이다 한병, 깨끗한 수련장과 동아전과 한번 갖고 공부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일년이면 다섯번도 더 바뀌는 국어선생님, 북한은 전부 빨간색이고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 살던 곳으로 알았던 우리들, 동네에 하나뿐인 TV에 온 마을사람이 모여 김일 프로레스링이나 킹스컵 축구를 보며 열광하며 한덩어리로 뭉쳤던 우리들이 아니었느냐. 이렇듯 우리들의 유년은 가난했지만 봄이면 삐비꽃, 자운영 흐트러지는 꽃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꿈을 키웠다.

'80년 5월 차라리 우리는 모두 깨끗하게 몸을 던졌다. 이런 이유로 죄인처럼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였더냐, 성인이 돼서도 날마다 변화되는 경제여건, IMF로 인한 구조조정, 명퇴, 조퇴라는 이름아래 천직으로 여기며 반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버림받고, 냉정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우리들이 아니었느냐.

그러한 낭만과 때로는 급격한 세태의 변화속에 가장 서글프게 세상을 살아야 했던 우리들, 우리는 이런 굴곡진 역사의 중심에서 살았다. 그래 오늘은 모든 것을 잊자. 생채기 같은 기억은 지워버리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만 가슴에 간직하는 거다.


오상민 기자 osm11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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