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시인, 통영서)
행사는 서툴렀지만 예정된 일련의 순서에 따라 진행됐다. 개회식에 이어 축사, 경과보고 그리고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시 낭송 장면에서는 잠시 숙연해진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술을 마시고 반복된 이야기로 일관하다 얼굴 한번 보고 끝내기보다는 우리들은 비록 이 사회에 화려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가슴속에 잔잔한 향기가 돼 머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시 낭송을 준비했다.
하지만 몸과 머리는 허공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더이상 어쩔 수 없다. 이어 차기 회장선출 그리고 부산에서 큰 뜻을 갖고 열심히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의 간단한 근황을 듣고 모두 일어나 한사람 한사람 포옹을 하고 지난 세월의 안부를 물으며 오전 열린 마당은 끝났다.
점심은 막 잡은 사슴고기로 파티와 뷔페 그리고 이야기꽃으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30년전 우리는 이성이 옆에만 지나쳐도 얼굴이 홍시처럼 붉히는 그런 소년소녀들이 아니었던가. 많은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지나 세월을 만들고 세월은 지나 그리움이 됐다. 이제 우리는 어느새 불혹의 나이도 절반을 보냈다. 그래, 흐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만 얼굴에 기미도 끼고 주름살도 하나 둘 늘어나고 듬성한 하얀 머리들. 그래도 무엇을 부끄러워 할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의 증표가 아니겠는가?
오후에는 운동경기에 이에 멋진 노래자랑을 했다. 막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 탓에 오후 4시가 되면 출발 예정이라는 서울행 관광버스는 5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좀더 많은 것을 나눠주지 못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은 들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노을에 서러움이 물들다 돌아서는 이 땅은 때로 얼마나 허허로운지…. 이제 이 밤이 지나고 또 다시 내일이 와도 우리들은 환한 모습으로 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물은 흐른다, 또 시간은 흘러 어디에서 멈추어 설까, 시간은 저 만치 흘러 추억을 만들고, 또 세월은 흘러 역사를 만들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부른 노래 소리 용암산, 예승산에 울려 퍼지거든 이렇게 말해다오. 나를 떠난 사람 이리 와 다오. 나를 잊은 사람 이리 와 다오. 이 곳이 철들면 찾자는 고향이고 꿈에서조차 잊지 못한 땅이다, 이제 친구들의 가슴은 막 달아오른 6월의 태양처럼 세상을 뜨겁게 보듬을 것이다.
문득 서작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제비꽃 향기에 친구들의 마음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래 더이상 이 땅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가 태어나고 우리가 꿈꾸어온 고향의 향기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오상민 기자
osm1158@hanmail.net
- Copyrights ⓒ 디지털세정신문 & taxtime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