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강 세무사의 X파일]기업세무관리 비법(6)

2005.12.08 00:00:00

'허순강 일병 구하기'

10·26이후 12·12사태를 겪는 과정과 '80년 이른바 '신군부'시절의 국정 실상은 한마디로 법질서와 상식보다는 '휘두르는 자의 힘'만이 통하는 시기였다. 신군부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모든 국정이, 또는 사회질서가 요동치는 '칼바람'이 세상을 지배했던 것.

세무행정도 어쩔 수 없이 그 암울한 시기에 피맺힌 한 장(章)을 장식할 수밖에 없었다. 신군부는 권력기관, 즉 중앙정보부,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을 하루 아침에 가차없이 '접수'했다.

그 당시에 회자되던 일화를 보자.(한국세정신문 2004년10월7일자 서채규의 세정가 爐邊野談)

80년대초 어느해 겨울, 서울시내 세무서 서장실에서 출입 보안사 요원이 서장으로부터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장이 아침 티타임을 주재하며 훈시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그때 갑자기 서장실의 문이 덜커덩 열리더니 세무서 출입 보안사 요원이 불쑥 들어왔다. 서장은 "나 지금 좀 바쁜데……"라고 하자, 그 보안사 요원은 서장을 향해 뭔가 다급하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한쪽 귀퉁이로 서장의 팔을 끌어당겼다.

세무서에 자주 들락거렸고, 평소 좋은 내색만 해왔기 때문이라서 그런지 그 요원은 자신의 행동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 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여기가 당신 안방인 줄 알아?" 서장은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요원의 얼굴을 가격해 버렸다. 그리고는 "김 계장, 이 새끼 손 좀 봐?"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장의 돌발행동에 그 보안사 요원은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아니, 아니"만 연발할 뿐 전혀 항거하지 못했다. 평소 '물서장'으로 알고 있던 직원들은 서장의 이 끔찍한 강단이 놀라울 뿐이었다. 더구나 보안사라고 하면 설설 길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의 형편을 생각할 때 순간적으로 뒷일도 걱정이다.

"저런 새끼는 손 좀 봐줘야 돼. 여기가 지 안방인 줄 알아? 박 과장, 보안사령부에 전화해. 사령관한테 저렇게 교육시켰냐고 알아봐야겠어. 더러워서 오냐오냐 하니까 이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 있어."

기관장 권위가 몰상식한 보안사의 일부 '망나니'로 인해 유린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며칠 뒤, 서장은 보안사 간부로부터 중국식당으로 점심초대를 받았다. 긴장하는 서장에게 그 간부는 "서장님이 우리 직원을 살렸습니다. 서장님이 아니었더라면 필시 다른 사람 손에 피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저에게 직보를 해줘, 미리 손을 써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을 수 있었다"면서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산다는 것이었다.

80년대 초. 필자가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시내 세무서에 근무하던 때이다. 모처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허순강씨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본부 보안부대에 근무하는 중령 ○○○입니다. 내일 오후 7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납시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건 거기서 말하겠습니다."

순간 급소를 정통으로 맞았다는 느낌이 온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때가 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도망칠까? 그러면 학교는? 생활은? 등등……. 온갖 잡생각이 든다. 학교 강의시간에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고 꼬박 밤을 세웠다.

그 시절 보안사는 법이고, 나는 군대생활을 막 제대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보안부대 중령이라는 말은 죽음과 같은 공포였다.

다음날 출근해서 나 혼자 고민을 할 사항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상급자들에게 사건 전말을 보고했다. 서장을 위시해서 세무서 전체가 난리였다. 도피를 시킬 것인지, 현장에 보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토의 결과는 '허순강 구하기 특공대 배치'였다. 같은 과에 근무하는 건장한 직원들을 만날 장소에 배치했다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방안이었다. 시간에 맞춰 우리 직원들이 미리 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보안사 간부를 만났다. 옆에 직원들이 있다고는 하나 후들후들하는 다리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제가 ○○○중령입니다. 전화로 말씀드리기 뭐해서 직접 뵙자고 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모시는 ○○사령관님 건에 대해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령관님이 나서기에는 모양이 안 좋아서요. ○○건에 대해서 선처 좀 부탁드립니다."

"겨우 그겁니까?"

그날 밤 보안부대 중령과 상당히 많은 술을 마셨다. 지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의 초라한 모습에 씁쓸함이 남는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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