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옥스퍼드(Oxford) 거리에서의 단합대회
…(전략) 우리의 이번 과정을 지도하는 과정 장 '리드'씨와 헤어지고 난 후, 우리 일행은 런던시내에 나온 김에 한국식당에서 단합대회를 갖자는데 합의했다. 말이 단합대회이지 실은 그동안 굶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함이다.
사실 그동안 돈 아끼느라 햄버거로 끼니를 대신한 것이 어디 한두번이냐? 오늘은 김치찌개를 실컷 먹어봐야겠다.
그러나 한 그릇에 11파운드 우리 돈으로 1만5천원이나 하니 함 부로 먹을 일이 아니다.
런던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옥스퍼드 거리에 한국식당 '아리랑'이 있다. 런던시내에는 아리랑식당 말고도 '미미집' '고려정' 등 우리 교포가 경영하는 식당이 네개가 더 있었다.
충남 온양이 고향이라는 지배인 '지석남'씨와 경비 절약을 위해 절충 끝에 술은 입국때 공항면세점에서 사온 것을 쓰기로 하고 식사는 각자 갈비 1인분에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택하기로 했다.
10평 남짓한 아리랑식당 지하 홀에 우리 일행들이 들어와서 앉기가 무섭게 벌써 떨그럭! 소리가 난다.
음식이 있으면 술이 따르고, 술이 있으면 노래가 있고, 노래가 있으면 춤이 따르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가 아닌가?
런던시내 중심가에서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홍도야 울지 마라…' 이건 교육부의 李선생이, '우울었쏘 소리 잇 첫쏘! 이 가슴이 터지도록…' 이건 엄단장이, '꽃피는 동백섬에…' 이건 김 여사가, '가는 세월 그 누구도…' 이건 나의 십팔곡이다.
(8)레이몬드 쇼(Raymond show)
밤 9시, 식당을 나와 보니 이대로 숙소로 직행하기에는 알콜의 힘이 용납하지 않는다. Oxford 거리의 명물인 Raymond show를 한번 가보자!
무슨 헌충일 기념식이라도 하는가?
정장 차림이라야 입장을 시켰으며 카메라나 휴대품은 입구에 보관해야 입장이 허락된다.
무대가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좌석에 안내를 받았다. 조명이 켜지며 음악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자 10여명의 늘씬한 무희들이 무대에 나타난다. 우와! 이건 처음부터 노골적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수줍다거나 부끄러워하는 눈치가 전혀 없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이 글을 더 써야 할지 나는 고민이 생긴다. 왜냐하면 이런 장면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필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놈들! 공부하러 영국 보냈더니 술이나 쳐먹고, 쇼나 보고, 놀아나는구나' 하실 것만 같은 청장님이나 원장님이 두렵기 때문이다.
더더욱 난처한 것은 '알겠습니다. 청장님! 귀국하면 이놈을 징계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실 것만 같은 감사관님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쇼 한번 잘못보고 모가지라면 진짜로 겁나지 않겠는가? 에라, 모르겠다.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볼 것은 봐야지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우리 세무공무원 교육원에도 예산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위기 한번 좋아질 것이다. 사실 말이지 우리 세무공무원만큼 일 많이 하고, 공부 많이 하는 공무원이 없지 않는가 생각한다.
모든 조명은 한 곳을 향하고 모든 관객들은 숨넘어간 시체마냥 조용하다. 한 장면이 끝나니 이번에는 젊고 건장한 머슴아가 오토바이에 발가벗은 아가씨를 뒤에 태우고 나타난다.
남자는 역시 여자보다 예의가 바른 것 같다. 팬티 하나는 사서 입었으니 말이다.
Raymond show는 일반적인 strip show와는 달리 아예 처음부터 벗고 나와서는 패션쇼에서 보는 걸음걸이로 무대를 활보하다가 사라진다. 관객들은 그 이상의 어떤 노골적인 장면을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감사관님 이 정도는 괜찮겠지요?'
Sex를 다루면서 전혀 Sexy하지 않는 그런 Show였다. 그러나 어쩐지 신사의 나라에선 좀 심한 것 같다. 그것도 수십년째 성황리에 장기공연 중이라 하며, 지금도 그 쇼에 출연하고자 하는 아가씨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다 하니 충격적이었다.
그들을 선발하는 심사위원님들 팔자 한번 늘어지겠다. 과연 어떻게 생기신 분들일까? 찾아뵙고 싶어진다. 그리고 같이 좀 어떻게 해보자고 부탁드리고 싶다.
아까 출연한 아가씨들 중에 뒷머리를 치켜 깎은 아가씨는 정말로 아까웠다.
(9) G56호 강의실의 수업
이제부터 공부 좀 하자.
작문 중에 기행문이 제일 수월하다고 들었는데 몇회를 연재하는 동안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섣불리 시작했다가 지금 포기할 수도 없으니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다. 그동안 국세에 관한 전문지라는 특수성으로 딱딱한 '국세지(國稅誌)'를 조금은 부드럽게 한 데 기여했다고 자부해 본다.
강의실은 25평 남짓하다. 좌우 양쪽은 그냥 벽으로 돼 있고 뒤편에만 창문을 내어놓아 어두컴컴, 항상 조명이 필요하다. 수업 분위기를 고려한 모양이다.
바닥은 연두색 카펫이 깔렸고 각자의 책상위에는 'Kero'양이 만든 각자의 영문 명패가 놓여있다. 흑판이 정면에 있었으나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 대신 모조지 여러 장을 차트처럼 걸어놓고 거기에 적어가며 강의를 하는데 지나간 강의 내용은 지면을 뒤집어 기억을 되살리는 강의기법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환등기(OHP)를 자주 이용했다.
오전강의 시간은 10시에 시작해 12시반에 끝이 나는데 그 중간 11시쯤 되면 간식으로 홍차나 커피, 비스킷을 아줌마가 가져온다.
그걸 먹다 보면 오전강의는 금방 끝이 난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다.
한시반에 시작하면 두시반에 간식타임, 네시에 끝이 난다. 정말로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 세무공무원 교육원에도 예산이 허락한다면 그렇게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위기 한번 좋아질 것이다. 사실 말이지 우리 세무공무원만큼 일 많이 하고, 공부 많이 하는 공무원이 없지 않는가 생각한다.
신고권장과 접수, 집계와 분석, 각종 조사출장, 결정결의고지서작성 송달, 각종 자료 처리, 체납세정리, 민원서류 처리 등등 할일도 많은 데다, 부기공부에다 요원자격 취득, 복잡한 세법 통칙 예규, 각종 지침 등등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공휴일이 어디 있으며 별 안 보고 귀가한 적이 있었는가? 부모님에게는 불효자식이고, 아내에게는 하숙생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식들에게는 형편없는 아빠로 낙인찍히고, 친구들에게는 모임에 못 나가니 왕따만 당하고….
누구나 공통된 신세가 아닙니까?
하여튼 이제부터라도 업무와 공부에 쌓인 Stress를 교육원에서나마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체력을 키워 건강하게 하고 편하게 교육기간을 마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Surning dail'에 있는 런던시청 공무원교육원에 갔더니 그 친구들 교육와서 골프치고, 낚시하고, 풀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정말 부러웠다.
그들은 '교육=휴식'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는 하지 않더라도 강의시간 중간중간 따끈한 인삼차 한잔에다 찰떡 몇개라도…. 시간 중간에 잡담하는 틈도 좀 줬으면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