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빈곤정책 방향에 대한 일고

2007.03.22 13:34:44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가난이란 매우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그리고 멀리 추방하고 싶은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와 6·25동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절대빈곤에 허덕였던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독립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이었지만 실상은 발언권도 미약했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조차 버거웠었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느 대륙, 어느 곳에 붙어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40∼50년전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과 국제사회에서의 냉대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다행히 높은 교육열과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경제적 기적을 이룩하면서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게 됐다. 더이상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선진국의 모임이라고 하는 OECD의 정식회원국으로서 눈부시게 도약했다.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면서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탈바꿈했고, 국민들의 절대다수도 빈곤에서 해방되었다. 특히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지난 30여년간의 경제적 성장·발전의 결과로써 경제개발 개시이래 소득분배상태가 가장 균등한 상태에 도달하는 등 소득격차문제가 더이상 사회·경제적 이슈로 대두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말 외환 및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무수히 많은 가구가 빈곤의 늪으로 추락하면서 빈곤문제가 다시 사회·경제적 문제로 등장했다. 특히 경제성장 및 삶의 질, 의료서비스 수준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급격한 핵가족화와 더불어 노인들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빈곤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관찰되고 있는 빈곤문제는 여러가지 면에서 연구·검토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필자는 2가지 점에 주목해 빈곤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향후 빈곤율에 대한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빈곤의 고착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먼저 빈곤율 전망과 관련해, 경제위기, 특히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노동시장의 경직화와 투자 부진, 노령화 등이다.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80년대이후 노동자들의 권익도 크게 향상됐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은 곧 분배격차의 축소를 의미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와 반대되는 현상도 관찰되고 있다. 일부지만, 이미 고용돼 있는 기존의 노조원들의 경우에는 후생복지 수준이 지속적으로 크게 향상되고 있다.

 

반면에 실업자나 조기은퇴자, 명예퇴직자 등을 비롯해 노조가 결성돼 있지 않고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한 불완전 취업자들의 경우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투자가 부진해 일자리 창출이 더딘 것,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취업이 사실상 어려운 노인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 등이 모두 노동시장의 경직화를 촉진하면서 소득격차 확대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고령화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이에 따른 빈곤율 상승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번째 문제, 즉 빈곤의 고착화 가능성을 보면 과거에 비해 그럴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로는 매 기간별로 각 소득자의 상대소득 순위가 뒤바뀌는데 그 변화의 정도가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소득수준이 기초생계비에 미달하면 빈곤가구로 분류된다. 그런데 어떤 시점에서 빈곤가구로 관측됐다고 해서 그 가구가 그 다음기에도 반드시 빈곤가구에 잔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계속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해 장기 빈곤가구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일시적으로 소득이 떨어졌을 뿐 다음기에는 소득이 빈곤선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는 경우도 많다.

 

전자의 경우를 장기빈곤가구, 후자의 경우를 단기빈곤가구로 지칭하기도 한다. 연령적으로 장기빈곤가구는 50대이상의 장년층과 노년층에 집중돼 있다. 이들 연령층에서는 은퇴자의 비율이 높고, 일단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게 되면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구조적으로 장기빈곤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연속한 두기간 사이에 나타나는 상대소득순위의 평균적인 변화율을 소득이동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는 소득순위 변동의 분산으로 많이 표현된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단기빈곤율이 똑같다는 가상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소득이동성이 크면 장기빈곤율은 낮아지고, 소득이동성이 작아지면 장기빈곤율은 높아진다.

 

즉 소득이동이 자유롭다면 현재 빈곤가구 중에서 다음기에 빈곤에서 벗어나는 가구의 비율이 많아지는 만큼 장기빈곤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반대의 이유로 소득이동이 자유로와질수록 장기빈곤율은 낮아진다.

 

최근의 소득자료를 분석해 보면 미미하지만 소득이동성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장기빈곤문제가 점차 심각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단순히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해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이 빈곤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노인들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에 대한 경제적 문호 개방 등 단기빈곤은 물론이고 장기빈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저소득 빈곤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해 소득이동성을 제고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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