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마라톤과 인생-上

2004.11.22 00:00:00

백재환(대구청 사무관, 법원파견)


누가 마라톤을 인생에 비교 했던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이 출발했으나 골인지점에서 성공하는 사람, 그리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 그리고 나같이 허덕허덕 뛰다가 걷다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겨서 골인지점까지 온 사람.

새벽 5시20분!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급하게 흥륜사를 향했다.

평생 매일 108배를 하겠다는 부처님(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차돈이 순교하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유서 깊은 신라 고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고 인적도 드문데 불쑥 나타나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스님께서 목탁을 치시기에 나는 이제 서야 도량석을 하시나 하고 의아해 하는데 나를 부르고 계시는 것 이었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은 대웅전이 아니었고 비구니 스님만 계시는 절이라 남자가 나타났으니 경계령이 내렸는가 보다. 기도하러 왔다고 하면서 그 절에 계시던 비구니 법우스님의 함자를 댔더니 대웅전에 불을 켜주시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신다.

새벽기도를 다니는 불자도 거의 없는 데다 남자 신도가 굳은 신심으로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타고 여관방에 와서는 얼른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 7시, 대회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고속터미널에 온다기에 기다리는데 셔틀버스는 오지 않고 서울에서 오셨다는 한국교육신문 신형수씨를 만났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한눈에 서로가 달리는 사람임을 알아보고 일행이 됐다.

한참을 기다려도 셔틀버스는 오지 않아 같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는 경주의 철인으로 소문난 80세 노기사였다. 차비는 고향에 오신 손님을 대접한답시고 내가 내겠다고 우기고 서로 의기투합해 신이 난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천리를 달려와 이류 여관방 신세를 지고, 고독한 질주인 달리기를 하는 외로운 사람들…. 우리는 금시 친해져서 같이 손을 잡고 서라벌을 가득 메운 인파를 헤쳐 나간다.

옷을 갈아입고 주루에서는 곧 헤어져 자기 갈길을 갈 사람들이지만….

안개가 자욱이 짙게 내려진 황성 옛터 출발선에 들어선 나는 가슴이 설렌다.

내빈 소개에서는 경주시장 다음으로 친구 이종근 시의회의장이 소개된다.

운동이라면 무엇이든 잘 하던 그 친구가 부끄럽다고 배번을 가리고(코스별 배번 색상이 다름) 10㎞를 뛰고 나서 하는 말 "10㎞는 적당하더라, 하프는 사람이 할 짓 이가 그게! 풀 뛰는 거, 그게 인간이가! 괴물이지, 괴물!"

내가 처음 풀 뛴 축하자리에서 20여명의 고향친구들이 대형 식당의 술을 몽땅 비우고 인사불성돼 인생을 읍조리던 인간의 친구들!

단상 높이 선 친구를 향해 "종근아!"하고 큰 소리로 불러서는 약수를 하고 떠난다.

마라톤에 대한 두려움과 연습량은 적었음에도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욕심으로 며칠동안 잠을 설치고 또 걱정된다. 특히 평소에 속이 좋지 않아 '대장암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등 잡다한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친다.

달리다가 죽은 사람도 많다니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유언장을 써둘까 말까 몇번이고 망설였는데, 실제 나는 약초재배단지 조성에 관해서는 모두 노트에 정리해 뒀고 동부정류장까지 태워다 준 큰 아들에게 미결된 일에 대해 소상히 말해 주었지.

생명을 담보로 한 마라톤! 달려 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그 고통, 그 희열!

어제밤도 남들의 체험수기를 읽으면서 혼자 눈시울이 붉어지고, 얼마나 울었든가.

인생의 전환기, 새로운 출발점에서 나 자신을 위한 실험, 각오!

처음 풀코스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특히 유방암 수술을 하고 투병 중이던 마누라의 쾌유를 빌며 뛰었고, 두번째는 아들의 소원성취, 좋은 대학가서 제 갈길을 제대로 잘 가주길 빌며 뛰었다. 그 힘든 길을….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제 할일을 잘 하고 있고, 내 자신을 위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답을 구하기 위해 뛴다.

처음 속도와 마지막 속도가 같아야 하는 달리기, 그렇지 않고는 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다. 처음 5㎞가 중요하다. 천천히 뛰어야 한다, 천천히, 계속 속으로 다짐을 한다.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4시간안에 들어오겠다는 내 목표가 나를 재촉한다. 그리고 뛸만도 하다. 10㎞를 지나 18.9㎞ 지점은 서천다리에서 무열왕릉 입구를 돌아오는 내가 삼십수년전 차를 타고 다녔던 길이다. 길가에 널어선 가로 수, 중학교 다닐 때부터 기차통학을 하고, 고등학교때는 버스를 타고 다니던 낯익은 길.

차를 놓쳐 이 길을 걸어보기도 했고, 그 때는 멀기도 했었지만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뛸 수가 있었다.


강위진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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