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연일 5~60명대를 웃도는 확진자 추이는 ‘코로나 장마’를 방불케 한다. 기업들은 슬슬 장기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임시로 도입했던 ‘재택근무’를 미래형 업무환경 구축의 기회로 전환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밝힌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를 시행한 기업은 4배 이상(8→34%) 늘었다. 대기업(45.8%)·중견기업(30.6%)·중소기업(21.8%) 등 규모에 따라서도 골고루 증가했다.
이들 기업은 비대면 업무 시행 초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업무효율이 나쁘지 않았다’(84%)고 주로 답했다. 직원들의 만족(82.9%) 역시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재택근무를 장기적으로 확대하려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로 ‘보고·지시 효율화(51.8%)’, ‘임직원 인식·역량 교육(28.1%)’ 등이 필요하다고 꼽은 기업들이 많았다.
세무사사무소의 상황은 좀 더 특수한 면이 있다. 고객을 대면하는 현장 중심의 활동이 필요하고, 업무가 몰리는 신고기간이 있어 근무시스템을 전환하기 어렵다. 실제로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시도하게 됐다는 사무소들이 대다수다. 세무사들이 가장 주저하게 되는 부분은 '업무 효율성'이다. 일분 일초도 아까운 신고기간, 업무 누수가 생기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세무사 A씨> “제일 바쁜 게 3~5월인데 효율성이 떨어질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일주일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요. 막상 재택근무를 진행해 본 결과는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재택근무는 세무회계프로그램 운영이 생명인데, 지난해 도입한 D사의 솔루션으로 업무 컨트롤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AI로 자료를 자동 스크래핑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전송된 자료 양과 직원 개개인이 실제로 처리한 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그때그때 업무 진도율을 체크하기 편리했어요.
업무 지시 프로세스도 고민이었죠. 이것도 솔루션에 내장된 업무전용 메신저 기능을 활용해서 일일 화상회의를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매일 1~2회 회의를 진행하다가 직원들이 업무에 적응하면서 주 1~2회로 줄였어요. 세무조정이나 세액공제처럼 제가 직접 알려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화면공유를 통해 직원들에게 제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업무를 처리하자'고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세무사 B씨> “재택근무를 실시하려면 미리 환경이 갖춰져야죠. 장소의 제약을 벗어나려면 회사・직원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없이 무턱대고 다른 방식을 도입하긴 어려워요.”
재택근무를 병행하면서도 올해 법인세(3월)·부가세(4월)·종합소득세(5월) 신고기간을 비교적 잘 마무리한 세무사 사무소들은 일찌감치 클라우드 기반의 업무 솔루션을 채택했던 곳들이다. 클라우드 시스템은 사무실의 컴퓨터를 가져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접속해 일을 처리할 수 있어 스마트 오피스 환경을 구축할 때 주로 활용된다.
현재 세무대리계에는 재택근무를 지원하는 솔루션으로 더존비즈온의 '위하고T(T엣지)'와 세무사회의 세무사랑 Pro(나우링크)가 대표적인데, 클라우드 기반의 세무회계사무소 전용 ERP시스템인 '위하고T'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클라우드 기반의 세무회계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갖가지 프로모션을 내놓으면서 입지를 확장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 중에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추진한 ‘2020년 중소기업 클라우드 서비스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미처 웹 기반의 업무환경을 구축하지 못한 사무소들은 이같은 지원을 계기 삼아 새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었다. 해당 사업에 신청한 접수금액은 약 21억여원(전체 기업 대상).
재택근무가 인력난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세무사들도 있다. 결혼 출산 육아로 휴직 또는 이직, 퇴직을 고민하는 세무사사무소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는 분명 매력적인 근무조건이 될 수 있다. 재택 등 원격근무가 가능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사전에 구축해 놓으면 직원들은 경력 단절을 피할 수 있고 세무사는 업무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다.
<세무사 C씨>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는 계속 일을 해주는 게 좋죠. 근로시간이 짧아져도 아이를 돌보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로 가려면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봐요.
단, 앞으로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근무를 진행하다가, 주1회 정도 재택을 해보고 업무에 누수가 없으면 주2회로 늘려보고 이런 식으로요. 왜냐하면 회사에도, 직원 자신에게도 안 맞을 수 있으니까요. (재택근무를) 실시해 본 소감은 그렇습니다.”
“올해 신고부터 클라우드 기반의 D사 세무회계솔루션으로 전환했다”고 밝힌 한 세무사는 “이전 프로그램과 병행해서 쓸 수 있고, 법인세 부가세 소득세 신고를 모두 처리해 봤는데 안정성에서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며 올 하반기부터는 전체 업체를 대상으로 클라우드 방식을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임고객 관리는 어떨까. 수임처 사장과의 소통도 앞으로는 비대면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세무사도, 직원도 관리해야 하는 거래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숙련된 직원의 경우, 약 4~50군데의 거래처도 담당하게 된다.
일일이 방문을 하기 어려워지다 보니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안이 필요하다. 자연히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세무사 C씨> “계속 새로운 기능들이 나오는데, 써 본 사람들이 활용 방안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올해 기장 데이터를 AI로 자동분석해서 나오는 ‘사업분석보고서’를 거래처 사장님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드렸더니, 세무조정계산서만 가져갔을 때보다 훨씬 반응이 좋더라고요. 세무서식이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글과 그림이 함께 들어간 사업분석보고서가 가독성이 더 좋으니까요.
그런데 사업분석보고서를 출력하려면 법인세 신고 결산자료가 미리 다 입력돼 있어야 해요. 올해에는 일부 업체의 신고만 AI 자동기장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사업분석보고서는 몇 군데 밖에 제공을 못 했어요. 경쟁력을 확인했으니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컨설팅에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대한상의는 앞서 제시한 분석 결과에서 향후 방향에 대해 “비대면 업무방식이 업무방식 효율화를 위한 과정인지, 업무방식 효율화를 이룬 후의 다음 단계인지에 대한 기업간 입장차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세계 시장에서는 “구글, 트위터 등 미국 IT기업들이 연이어 원격근무 확대를 발표하고, 제조기업인 일본의 도요타도 재택근무를 전 직원의 3분의 1까지 확대했다”고 소개하면서, “IT기술의 발달과 인식변화를 고려할 때 비대면 업무방식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제언했다.
올해 신고기간 국세청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납세자들에게 비대면 신고·납부를 권장했다. 홈택스·손택스를 활용한 전자신고에 대한 홍보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세무사사무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세무사들은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업무추진, 세무사사무소와 수임고객간 원활한 소통, 컨설팅 등 부수업무 강화를 위해서는 적합한 세무회계솔루션 도입으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