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5.17. (금)

국세청 고위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막는 방법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국세청이 곤혹스럽다. 전직 청장과 차장이 또다시 구속됐기 때문이다. 역대 국세청장 18명 중 7명이 법정에 섰고 이 가운데 6명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이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적은 듣기 싫지만 정확하다. 국세청이 얼마나 얕보였던지 이젠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참 딱한 집단이 돼 버렸다.

 

국세청은 청장 취임식이나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요란스럽게 ‘자정(自淨) 결의대회’를 하곤 한다. 기업체로부터 돈받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 뿐이고 고위간부는 그 와중에도 돈을 챙겼음이 밝혀졌다. 부끄러운 일이다.

 

2. 왜 이렇게 되었을까. 주된 원인은 기형적인 인사구조 때문이다. 국세청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승진이 어렵다. 2만명이 넘는 직원 중 고위공무원은 2∼30명 남짓하다. 고위직 자리가 부족하고 또한 승진하기 어려우며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결정적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는 정치판에 기웃거렸을 수도 있다. 여기에 눈치 빠른 기업이 가세해 그들의 정치권 연결에 다리도 돼 준다. 지연과 학연이 얽히고 돈이 촉매제 역할을 한다.

 

우연이겠지만, 지금 국세청 고위공무원의 절반 이상은 특정지역 출신이다. 원래 인재는 지역에 상관없이 골고루 나는 법이다. 그리고 고교나 대학교 그리고 행정고시 성적은 다른 지역 출신과 엇비슷했을 터이다. 그런데 정작 출세는 지방의 조그마한 특정도시 출신이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 출신을 압도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부끄럽지도 않나 보다.

 

3. 어떻게 해야 국세청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째, 국세청을 정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특정인을 국세청장으로 낙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칭 ‘국세청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2∼3명 정도 적임자를 추천받고 그 중 1인을 지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다면 국세청장이 굳이 정치권에 기웃거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세청장은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그가 납세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보다는 부패한 기업이나 정치인의 뒤를 봐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국세청의 탈정치를 도와줘야 한다.

 

4. 둘째, 국세청장의 인사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국세청 고위공무원의 승진은 국세청장이 쥐고 있다. 승진하려고 미술품도 갖다 주고 고급시계도 갖다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 돈으로 그것 등을 구입했겠는가. 다들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으로 했지 않았겠나. 기업체는 세무조사를 눈감아 달라고 줬을 것이다.

 

하여, 국세청장 인사권을 가칭 ‘국세청 고위공무원 인사위원회’로 넘겨야 한다. 국세청장의 적법한 지휘권을 보장하되, 과도한 권한은 분산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국세청장과 세무서장이 국세청장의 부당한 간섭을 뿌리치고 소신껏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5. 셋째, 국세청장의 외부 영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국세청장이 되기 위해서는 경영학 등 몇몇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외부 영입의 문을 제도적으로 열어놓고 있다. 사실 외부에서 영입된 자는 내부 출신보다 부정․부패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스럽다. 내부 출신은 2∼30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 본의는 아닐지라도 재벌 등과 ‘접촉’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외부 출신은 이들로부터 자유스럽다. 그래서 외부 출신이 내부 출신보다 과단성 있게 일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국세청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납세자 권리를 보장하면서 국고 수입을 단단히 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법학이나 경영학 등의 과목을 이수한 자 중에서 적격한 자를 국세청장으로 선발할 필요가 있다. 외부 출신은 내부 출신보다는 부정과 부패로부터 훨씬 자유스럽다고 본다.

 

7.  넷째, 행정고시가 아닌 일반직 출신의 국세청장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국세청의 주된 존재목적은 세무조사다. 이 분야는 행정고시 출신보다 일반직 출신이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직급이 7급이나 9급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고위공무원으로 진출하는데 행시 출신보다 10여년 늦다. 일반직 세무공무원은 국세청의 본질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군 조직의 장교와 직업 하사의 구별기준으로 보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더구나 일반직 직원 대부분은 대학 이상을 졸업했고 세무사나 공인회계사 심지어 변호사 자격증까지 소지한 자가 많이 있다. 세무조사 분야에서 이들이 행시 출신보다 능력이 뒤질 이유가 없다. 단지 계급의 출발선이 한참 뒤라는 점만 다르다. 이들 중 우수한 자들을 국세청 고위공무원으로 적극 발탁할 필요가 있다.

 

8. 결론적으로 국세청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돈을 다루는 집단이다. 따라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신중하고 진중해야 한다. 아닌 말로 ‘세상(돈)이 국세청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치권에도 세무조사권을 발동할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국세청 고위 공무원은 그래야 한다. 그래야 납세자가 국가를 믿고 세금은 낸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인사제도를 바로 세워서 국세청 고위공무원들을 부정과 부패로부터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 국세청을 부패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하고 국세청 고위공무원 구성이 행시 출신, 일반직 출신, 외부 출신이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구도가 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강건한 조직이 될 것이다. 조직은 위험이 닥치면 특성상 변질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성숙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방종보다는 ‘속박 속의 자유’가 더 달콤한 법이다. 국세청의 분발을 기대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