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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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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무르익었다'…수사권 독립 본격 시동 거는 경찰

경찰이 검찰과의 수사권구조개혁 추진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존 경찰청 내 수사권 조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수사구조개혁팀을 개혁단으로 격상시키는 등 적극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구조개혁'을 2017년 역점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청장은 "경찰은 기본적으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수사권 조정은 60년 넘도록 이어져온 경찰의 과제이자 숙제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수사권·수사지휘권·수사종결권·기소독점권 등 수사 전 과정의 권한과 책임이 검찰에 있다고 규정한다. 수사구조개혁은 이러한 권력 집중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 형사사건의 수사는 경찰에 의해 진행된다. 다만 영장청구 등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 수사를 마친 경찰이 해당 사건과 범인에 대해 유죄판결 여부 의견을 더해 검찰에 송치하면 이를 받아들여 공소를 제기하거나 불기소처분을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모든 권한이 검찰에 집중돼있어 권한 남용이나 부정부패 등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 수사 주체와 수사권한의 주체가 달라 경찰이 겪는 어려움 때문에라도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리 사건이나 조직적 문제가 나타나는 등 검찰이 약해졌고 국민들의 지지도 떨어졌기 때문에 해당 이슈를 제기하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일부 정치권에서 개헌 필요성에 동의했다는 점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예정된 대선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 수사구조개혁 어떻게 준비하나

이 청장은 지난 9월 취임 이후 수사권 조정 업무 담당 부서인 '수사구조개혁팀'을 다시 활성화시켰다. 형사소송법 개정과 영장 청구권 등 검사 권한을 명시한 헌법 개정 검토, 수사제도 및 정책에 관한 연구를 담당한다.

최근에는 총경이 이끌었던 '팀'을 한 단계 윗 계급인 경무관이 이끄는 '수사구조개혁단'으로 격상시켰다. 총경 1명, 경정 3명이던 조직을 경무관 1명, 총경 2명, 경정 3명으로 확충했다.

수장 자리에는 경찰 조직 내 대표적 수사권 독립론자로 꼽히는 황운하 경무관을 앉혔다.

황 경무관은 경찰대학 1기 출신으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갈등 때마다 내부 강경파로 꼽혀온 인물이다.

총경으로 대전 서부경찰서장을 맡았던 2006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 측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좌천됐다. 또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했다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경찰은 내년 대선 정국을 맞아 검찰개혁 이슈가 부각되면 수사구조개혁 이슈를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미리 경찰 역량을 강화하고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 전문성, 신뢰성 등을 높여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청장은 19일 "수사구조개혁은 검찰과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시대 흐름에 맞게 큰 틀을 만들어 역할을 나눠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체 역량을 높이는 것이 우선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진다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며 "검찰과 갈등할 것도 아니다. 서로 논의해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면 된다"고 강조했다.

◇수사권 조정, 경찰의 해묵은 과제…검찰과의 오랜 악연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과거 정치적 변혁기마다 어김없이 제기돼왔다.

출발은 지난 1955년 경찰의 기구독립을 골자로 한 법무부의 경찰법안 제출이 시작이었다. 1962년에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권 독립 주장이 나왔다. 1980년 4월 제5공화국 헌법을 개정할 때 다시 논의됐다. 1998년에는 수사권 독립 논의가 학계와 정치권 등에서 활성화되기도 했다.

현실은 냉정했다. 경찰의 자질과 수사 통제 필요성 등이 제기되며 경찰은 더이상 논의를 확장시킬 수 없었다. 한동안 식어있던 수사권 독립 논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함께 활발해졌다. 2003년 1월 경찰청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사법경찰의 수사권 독립안을 공식 제출하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또 2005년 취임한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사권 독립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검경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봉합되지 못했다.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검경 갈등은 최근 법정까지 오가며 치열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조현오 전 청장도 2010년 8월 청장에 오른 뒤 경찰청에 범죄정보과를 만들어 검사 비리를 수집하고 내사를 벌이는 등 수사권 조정에 힘썼지만 경기 수원의 20대 여성 납치살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경찰 조직 최초로 경찰대학 출신 청장이었던 강신명 전 청장 역시 임기 초에는 수사권 조정에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결국은 "정권의 눈치를 본다" 등의 말과 함께 수사권 조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내부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 "국민적 신뢰 회복 우선…검찰개혁 동시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현 시점이 수사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좋은 시기라고 설명한다.

다만 경찰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신뢰를 우선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사구조개혁 이후 경찰 권력이 비대화될 것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에는 수사권 독립 자체를 논의할 수 없었던 구조"라며 "비서실장, 정무수석, 총리 등이 검찰 조직으로 이뤄져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김기춘, 우병우 등 검찰 출신들이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도 수사권 독립을 얘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라며 "20대 국회에 경찰 출신 의원이 역대 최다인 8명이라는 부분도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 수사구조개혁을 위해서는 경찰의 인위적인 수사권 독립보다는 검찰 개혁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정농단 사태가 커진 것은 검찰의 독점적 수사구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경찰과 검찰이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였다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여론도 검찰 개혁 문제에 그 어느 때보다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하고 그 핵심에 검찰개혁이 있다는 것은 공통된 인식"이라며 "경찰이 신뢰를 회복해야 수사권 독립 문제가 제기될텐데 최근에는 해결 방안으로 검사장 직선제로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올 준비가 돼 있느냐가 문제"라며 "경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강하지 않다. 백남기 농민 사태와 이철성 청장 음주이력 논란, 촛불집회 신고 허용 부분 등 때문이다. 경찰 수뇌부의 자기 반성도 있어야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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