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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7. (토)

세월호의 교훈과 정치경제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함께 울되 결코 잊지 말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떠난 생명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은 이들 곁에 있어주기. 그리고 지금의 참담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절대 잊지 않기. 그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삼가 꽃다운 젊은 영령들 앞에 사죄를 구한다.

 

세월호 사고는 매뉴얼 부족 사회 모습의 한편을 드러냈다. 그런데 매뉴얼대로만 하면 모든 문제가 일사천리로 다 해결될까? 매뉴얼의 천국 일본, 매뉴얼대로 지진-해일 대피훈련을 철저히 하는 그 곳에서 3년전 매뉴얼대로 하다가 더 많은 희생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직관에 의해 움직여야 하나? 결국 두개 다 필요하다. 상호보완 관계가 정답이 아닐까. 촌각을 다투는 위기상황에서는 매뉴얼과 함께 리더의 직관, 그리고 관계자의 직업의식과 책임감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해마다 4월16일을 죄스럽게 기억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제대로 된 재난대응시스템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컨트롤타워를 바로 세우고 이 부분이 작동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원을 몰아줘야 한다. 2014년 국민소득 2만6천달러 대한민국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이래서는 안된다. 행정과 관련해 가외성(redundancy)이라는 개념이 있다. 불확실한 혼돈의 사회에서 실패에 대비하기 위한 신뢰성 확보 차원에서 중첩이나 남는 부분, 여분, 초과분을 의미하며 능률성,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최소한 재난관리 부분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가외성의 개념에 의해 시스템이 재구축돼야 한다.

 

규제와 자율의 균형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채워져야 한다. 비행기를 탈 때와 배를 탈 때 고객들이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반복훈련을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외항선과 같은 국제노선은 지키고 내항선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보여주기용 규제여서는 안된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시장에 맡겨놓았을 때 적정수준의 모니터링이 어려운 규제를 제대로 하기 위함이다. 2014년 현 시점에서 사회간접자본(SOC)확충정책이나 산업진흥정책과 같은 영역에서의 정부 개입은 논란이 있지만 재난관리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정부개입이 요구된다. 물론 이 때도 유능하고 투명한 정부 개입이어야 함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너무도 자랑스럽고 위대한 성취라서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다. 아직 가난과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성공의 역사이다. 우리나라가 이룬 산업혁명은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었다. 경제발전에는 산업기반시설이 필요하다. 도로도 있어야 하고 항만도 있어야 한다. 전기나 물도 있어야 한다. 또 다양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초 원자재가 싼 가격에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시장이 조화롭게 작동해 오늘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해야 한다. 급격하게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정책이나 행정의 질 관리나 역량 확충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형식적인 시스템 구축과 다양한 매뉴얼을 갖췄지만 실제 사고를 당했을 때 현장에서의 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서둘러서 되는 일도 있지만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학습이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20년전의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참혹한 해난사고로 기억되는 1970년 남영호 침몰,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그리고 이제 세월호 사태를 통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학습의 단계(threshold)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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