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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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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까지 돈 주고 사는 결혼식 풍속…"시간·비용 절감"

다음달 18일 결혼을 앞둔 한현희(33·여)씨는 최근 예식장에서 주례를 10만원에 계약했다. '퇴직한 공무원, 유머가 있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주례 선생님'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씨는 15일 "고등학교 은사님을 주례로 잠시 떠올렸다가 마음을 접었다"면서 "몇 년 만에 전화해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망설여졌다"고 밝혔다. 이어 "주변 분들께 주례를 부탁하면 '성의껏' 사례비도 준비해야 하는데 부담도 됐다"고 말했다.

주례도 돈으로 사는 시대다. 주변 어른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대신 결혼식장의 '옵션'으로 주례 담당자를 선택하는 예비부부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주례 섭외에 드는 시간과 노력 등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비용 또한 '전문 주례'가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할 때보다 더 저렴하다. 주변 어른께 주례를 부탁할 경우 양복, 교통비 등 관례로 뒤따르는 '성의 표시'가 상대적으로 고비용이 되는 것이다.

오모(34)씨는 "지난해 가을 친한 선배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본 대학교 은사님이 '나한테 주례비로 준 게 5만원짜리 양주더라'며 노골적으로 서운해하셨다"면서 "훗날 내 결혼식 주례도 부탁했더니 '서울 50만원, 지방 30만원'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당황했었다'고 전했다. 해당 교수의 집은 부산이다.

김모(32·여)씨는 "결혼식 때 고등학교 선생님께 주례를 부탁드렸다"며 "몇 차례 찾아뵈면서 대접한 식사비를 포함해 양복 한 벌, 소정의 교통비를 드리고 나니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선생님께는 감사했지만,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는 '전문 주례'를 추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례 대행을 원하는 예비부부들이 늘면서 주례 전문 대행업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웨딩전문업체에서 주례를 대신 섭외해줬지만, 이제는 '시장 선점'을 위한 전문 업체들의 주례 대행 경쟁이 벌어지는 실정이다. 

포털사이트에 나와있는 A주례업체의 경우 소속된 '주례 선생님'이 70명이 넘는다. 직업도 유명대학 교수, 목사, 회사 대표, 교사, 유치원 원장, 단체 대표, 공무원 등 다양하다. 다문화가정 시대에 발맞춰 영어, 독일어, 일어, 중국어 등 결혼식 주례사를 외국어로 선택할 수도 있다. 전문 주례들은 차별화된 주례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올려놓고 주례 경험 횟수까지 적시했다. 

 

주례비는 사람,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업체 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일부 업체는 식이 끝나고 돈을 받는 '후불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 주례비 중 일정 금액은 사회단체, 병원 등에 기부한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결혼업체 관계자는 "예비부부들이 최근 어른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주례를 찾는 것을 힘들어한다"며 "주례를 결혼식의 여러 '형식'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기 위해 모든 절차를 대행업체에 맡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주례 대행이 성행함에 따라 주례사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주례는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과 덕담을 듣는 자리다. 하지만 최근 주례를 사고파는 '서비스'의 일종으로 생각하면서 '감동'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주례를 인간 관계로서 부탁할 경우 '이 사람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이걸 부탁해도 되나' 등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되지만 서비스 상품이라고 여기면 그런 고민 없이 '비싸냐, 싸냐'만 생각하면 된다"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돈이라는 단일 척도로 편하게 해결함으로써 (지인에게 주례를 부탁할 때 하는) 걱정이 사라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질적인 차원까지 보장받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결혼한 김모(35)씨는 "예식장을 통해 전문주례를 섭외했는데 이력과 약력도 없었고 주례사가 너무 성의가 없었다"면서 "시간 때우고 돈을 챙기려는 느낌만 받았다"고 불쾌해했다. 그는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망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털어놨다. 

시대가 바뀐 만큼 결혼식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식과 틀을 중요시하는 전통적인 결혼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와의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한국은 의례에 집착하는 면이 많다. 과거 척도만을 가지고 결혼식 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전형적인 꼰대일 수 있다"면서 "결혼식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답해야 하는 의례이기도 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비스(전문 주례)를 사는 것 또한 과거와 현재의 절충안이지만, 이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도 고민해봐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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