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김병욱 의원 주관 '상속세 유산취득세 토론회'
김신언 세무사 "상속세 연대납세의무 가장 큰 문제점…폐지해야"
심충진 건국대 교수 "상속재산 12억원 비과세로 설계 필요"
이상율 전 조세심판원장 "유산세 방식 위헌 소지…바꿔야"
임재범 입법조사관 "배우자 공제 확대하고 인적공제 현실화"
정부가 73년만에 상속세에 메스를 댄다. 1950년 상속세법 제정 이후 유지해온 유산세 방식을 뜯어 고쳐 유산취득세로 과세체계를 전환하는 대수술이다. 정부는 상속세의 유산취득세 방식 전환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전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방점을 둘 방침이다.
문경호 기획재정부 상속세개편팀 과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상속세 유산취득세 토론회’에서 “유산취득세는 국민 생활과 직결돼 있는 만큼 정부는 국민들과 함께 개편방안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산취득세 도입방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사전에 언론, 국회, 사회 각계각층과 긴밀히 소통하는 등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송기헌·유동수 의원이 주최하고 김병욱 의원과 한국세무사회가 주관한 ‘상속세 유산취득세 토론회’가 2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과세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는 상속인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상속인은 적게 내는 게 과세형평성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현재의 유산세 방식은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한다. 피상속인(물려주는 사람)이 남긴 상속액수가 클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실제 상속액에 관계없이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상속인이 취득하는 재산에 비해 세금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닌 상속인이 각자 물려받은 상속재산의 액수에 따라 세액이 결정된다. 상속인 개인의 취득분에만 세금을 매기는 방식인 만큼 총 상속세 부담이 줄어들 수 있고 공평과세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산 위장분할이 성행할 우려가 있고, 과세관청이 상속인별 상속규모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김신언 세무사 "일본 상속세 과세 구조 기형적…모방 신중해야"
"상속인 자녀 1명일 땐 유산취득세형 더 불리…공제제도 설계 중요"
이날 토론회에서는 상속세 연대납세의무 폐지, 상속재산 위장분할을 통한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과세관청의 입증책임 완화, 상속 추정규정 유지 등 혜안이 쏟아졌다.
배우자 상속공제 확대, 미성년자·장애인 등 인적공제를 현실화해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과세관청의 세무행정비용 감소를 위해 일정금액의 신고납부세액공제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신언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유산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연대납세의무를 들고 유산취득세 전환에 따른 폐지를 주장했다.
상속이 개시되면 피상속인 명의 재산 등을 모두 합산해 상속인들이 연대해 납세 의무를 지게 된다. 이에 따라 실제로 다른 사람이 상속재산을 받았더라도 배우자가 상속세를 납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유산취득세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재산 위장분할에 따른 조세회피에 대해서는 상속세는 제척기간이 다른 세목에 비해 길고, 높은 가산세율로 탈루가 발생할 우려가 감소했다고 짚었다. 금융·부동산 실명제와 국세청의 과세자료 전산화에 따른 과세인프라 확충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유산의 위장 분할 방지를 위해 독일의 차등과세를 보완해 도입하는 방법을 제언했다.
공제제도 설계 중요성도 대두됐다. 상속인이 자녀 1명일 경우 유산취득세형이 더 불리해지는 문제가 발생해 세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괄공제를 폐지하면 세부담 증가로 국민 반발이 우려되는 만큼 상속세 개편의 가장 기본방향은 공제제도를 어떻게 유지할 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신언 세무사는 단기적인 상속세제 개편과제로 물가연동제를 제언했다. 현행 유산세 과세체계에서 누진세율구간을 조정해 세율을 인하하고, 물가상승에 따른 상속공제를 현실화해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각종 공제제도를 통폐합해 상속세 과세체계를 단순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산취득세 과세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 개편시 우려사항으로 일본의 과세제도 모방을 들었다. 일본은 1958년 유산취득세형이던 상속세를 취득과세형으로 바꾸면서 유산세형과 절충했다. 그러다 보니 취득과세형에 피상속인의 유산총액을 과세물건으로 하는 기형적 과세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인적 공제가 세액공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차이점이다. 이 방식은 납부세액 산출방식이 유산세형 및 일반적인 유산취득세에 비해 아주 복잡하다. 반면 다른 주요국들은 인적공제를 재산가액에서 공제한다.
토론자로 나선 심충진 건국대 교수는 “상속공제금액과 상속인 수에 따라 유산취득세와 유산세 유불리가 갈리는데, 조세중립성 유지를 위한 설계가 먼저 있어야 한다”며 “부동산에서 비과세 기준금액이 12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최소 상속재산 12억원을 비과세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업 외국인은 국내재산 한정으로 상속세 과세범위를 축소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외국인 고급인력 유출을 방지하고 국내에 유치하는 조세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일정기간 이상 국내에 주소를 둔 취업 외국인 또는 배우자가 사망해 국내·국외 재산에 대해 과세할 경우 외국인의 자금 조기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유산세 방식은 위헌적인 소지가 다분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개인의 담세력에 따라 상속세 부담을 배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율 전 조세심판원장(법무법인 가온 고문)은 ”부부자산소득 합산과세제도, 공동사업소득 합산과세제도,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과세제도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선언을 받았다. 모두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라며 ”유산세 방식이 동일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산세 방식은 우리나라의 민법상의 재산상속 방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상속에 관해 포괄승계주의에 따르면서 상속세 과세는 유산세 방식에 따르는 입법례는 이례적으로, 개선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임재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는 경우 상속공제에 따른 세부담 감소 효과가 해당 상속인에게 직접 귀속된다는 점을 감안해 배우자 상속공제, 미성년자·장애인 등 인적공제, 일괄공제 등 상속공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상속세의 보완세 역할을 하는 증여세에서도 증여재산 공제 등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