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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21. (화)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2)

세무대학원의 출범과 세무학석사·박사 학위자의 배출 양상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서울시립대학교에는 다른 대학교에 없는 ‘세무대학원’이라는 대학원 제도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세계 유일의 대학원 제도이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 관한 세금계산서제도가 선진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세자료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과 비견될 만큼의 독특한 예가 아닐 수 없다. 그 원생 모집에 있어서도 대학원의 경우 미달의 예가 허다한 근자의 실정과는 달리 3~5대 1의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큰 대학에서 20년이 넘도록 그 설립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점은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세무대학원이 워낙 특화된 학제일 뿐더러 그 운용재원의 조달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실제로 독립 조직의 대학원일 경우에는 여러 가지로 구색을 갖추어야 하므로, 원생들이 내는 등록금만으로는 태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사료된다. 그렇다면 서울시립대학교의 경우에는 서울시를 등에 엎고서 학부의 세무학과와 더불어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리고 특별시로서 거대 예산으로 움직이는 수도 서울시 산하의 하부 조직으로 그럴 만한 위치를 적절한 시기에 운좋게 독점적으로 점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운명론에서 말하는 이른바 교운(校運)이 따른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여 왔다.


이와 같은 세무대학원은 그 창설과정이 비교적 순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고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인가도 싶다. 그 얽힌 뒷얘기를 꼭 남기고 싶은 이유는 거의 혼자서 뛰어 세무대학원의 설립인가를 받았던 필자로서는 당연한 욕심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 법학전문대학원(이른바 law school)이 창설되어 학교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초석이 되기도 하였으므로, 이하는 꼭 기록에 남기고 싶은 내용이기도 하다.


필자가 부임한 1982년의 서울시립대학은 교수가 모두 78명인가에 지나지 않았던 작은 규모였다. 그 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정식으로 제1대 총장(정희채)이 근무한 기간은 1987.3.1.~1991.2.28.이었다. 다음으로 제2대 총장은 학교 발전을 꾀한다는 이유로 당시에 자유화 바람을 타고 유행했던 비공식 조직인 교수협의회에서 외부영입을 통하여 선거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교당국에서 해당 총장의 승인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일이 벌어졌다(현재는 시립이라는 정신에 터잡아 서울시장의 재가가 있으면 된다). 그러자 나중에 국무총리 자리에 오른 해당 당선인은 교수협의회의 반려결의가 있게 되면 일반 사회여론에 힘입어 승인이 불가피하리라는 계산을 하고서 그리하였다고 짐작되는 사표를 교수협의회에 제출하게 되었다. 이 사표를 국문학 전공 교수인 당시의 협의회 회장이 교수협의회에 다시 상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수리하여버린 사건이 생겼다. 이는 일처리를 할 줄 모르는 자못 서투른 실수라고 평가되었었다. 그리하여 시일관계로 다시 외부영입을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아 학내 교수들 중에서 제2대 총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말았다.


이같은 지연 사유로 제2대 총장의 임기는 1991.5.1.~1995.4.30.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학내 여론은 새학기의 시작인 3월1일부터 새 총장의 임기도 같이 시작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그가 마지막 두 달의 임기를 사양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가 재직시에 학교 발전에 기여한 실적은 전무하다는 이유로 교수협의회에서 다시 외부영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미 지난해 12월에 선출된 제3대 총장(김진현)은 1995.5.1.~1999.4.30.의 임기로 재직하게 되었다. 이 총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라 발이 넓어서인지 아니면 지방의회가 없었던 시절이라 서울시를 설득하는 일이 쉬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년도 예산의 90% 상당액을 즉시 증액한 수정예산을 소리소문 없이 쉽게 확보하였다. 이 증액된 예산 수준은 계속 유지되어 왔다. 이것이 학교 발전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김 총장은 위 증액된 예산을 활용하여 유능한 신임교수를 채용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마침내 그 임기말에는 교수가 230명인가로 늘어나고, 학과 수와 모집정원이 크게 증가되는 혁혁한 성과가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의 교수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는 바, 그러한 학과의 교수들은 위축감을 느끼면서 피해의식에 젖어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필자는 의도를 가지고 귀를 기울여 왔지만, 위 김 총장 덕분에 학교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찬사를 지금까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와는 달리 필자로서는 김 총장의 은덕을 크게 입었는데도, 그러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여 왔던 처지로서 그 내용의 일단을 이 지면에 소개함으로써 이제야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김 총장 밑에서 교무처장을 맡은 이가 개인이기주의를 깔고서 학부의 세무학과 명칭을 바꾸어 다른 학부로 통합하려는 은밀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던 무렵에 김 총장이 새로 출범시키려는 ‘도시과학대학’에 세무학과를 포함시켜 달라는 필자의 대면을 통한 청원을 받아들여 주시어 학과 명칭을 원래대로 유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사회학과 출신으로서 언론계에 오래 종사하여 터득하신 시대추세를 읽는 안목으로 세무대학원의 설립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시고서 서울시장의 ‘윤허’를 받아냈다는 사실이다.


위 일련의 과정은 김영삼정부가 대학정책을 개방적인 방향으로 선회시킨 다음에 진행되었다. 그것은 학위 명칭과 대학원 설립을 미국식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자 한 정책변화의 산물이다. 돌이켜 보면, 김영삼정부가 재정문제를 잘못 다루어 IMF 사태(구제금융 요청)를 빚었다는 비판이 계속되어 왔으며, 그 사태를 안타깝게 회상하는 얘기가 요즈음도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재산등록제의 실시 등은 김 대통령의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앞서 연재 (1)에서 국립대학의 수와 정원을 너무 늘린 정책을 비판하였지만, 이같이 특성화를 지향하는 대학원을 허용하는 대학정책은 높이살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은 개방적인 교육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 박사학위 명칭을 대학의 뜻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허용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때까지 각 대학교의 대학원 조직은 이른바 일반대학원(구체적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이라는 식의 명칭을 갖는 대학원)과 특수대학원(대학원 앞에 다른 수식어가 들어가는 명칭의 대학원, 예를 들어 행정대학원 경영대학원)으로 나누어졌으며, 후자에서는 석사학위만을 수여할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위 개방적인 정책에 따르면,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모두 수여할 수 있는 특수대학원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중에는 전문대학원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정책방향에 따라 1998년 봄 각 대학교에서는 박사학위까지의 수여가 가능한 특수대학원을 고안하여 교육부에 신청하는 붐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경희대학교에서는 평화대학원을 그리고 효성여자대학교에서는 효도대학원을 신청했다. 도합 22개인가 하는 새 대학원 설립안이 교육부에 신청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서울시립대학교의 세무대학원이었다. 그리하여 그해 11월초에 이르러서야 교육부(이해찬 장관)에서 설립취지의 설명을 뒤늦게 듣는다고 했다. 필자는 이 설명대열에 참여했다. 오전 9시에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하여 무순으로 호명하면 설명을 하는 방식이었다. 화장실 외에는 자판기조차 없는 넓은 방에서 모두들 호명만을 기다리는 판이었다. 점심을 탈탈 굶은 상태로 말이다. 교육부가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고 지금도 묻고 싶은 심정이다. 필자는 저녁 7시가 넘어 한두 사람만 남은 상태에서 불려 들어가 겨우 15분 정도의 설명을 마쳤다. 1주일 후에 전면보류라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 때의 허탈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전문대학원의 설립허가절차는 1999년 봄에 다시 진행되었다. 그런데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새 총장(이동)의 임기가 5월1일에 시작되었다. 이 총장은 서울시장의 여러 학사에 관한 승인절차를 자신이 다시 거친다면 교육부에 제출해야 하는 기일을 지킬 수 없으므로, 작년에 이미 서울시를 경유한 모든 미제출서류를 그대로 교육부에 낸다고 했다. 이런 사정이 없었다면, 공과대학 출신인 이 총장이 세무대학원 설립의 불필요론을 사석에서 설파한 적이 있었다는 소문으로 미루어 그 설립이 무산될 뻔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필자는 교육부의 대학정책실장(김화진)을 5월부터 10월 초까지 무려 14번이나 방문하여 마침내 설립인가를 받아냈다. 그 답례로 학교당국의 법인카드를 빌려 그 정책실 직원 10여 명을 종합청사의 근처 식당에 모셔놓고 갈비탕으로 점심대접을 한 것이 로비의 전부였다.


마침내 10월 중순경에 25명 모집의 세무대학원(나중 세무전문대학원) 주간 세무학석사 학위 과정의 설립인가가 발표되었다. 그 원생 모집은 2000년 1학기부터 시작되었으며, 미달 사태가 없기 때문에 현재까지 제2학기 모집은 하지 않은 채로 운영되고 있다. 그 이듬해에는 5명 모집의 세무학박사 학위 과정이 신설되어 원생모집에 들어갔다. 위 석사학위과정은 2001년에 35명, 2008년에 40명, 2023년에 42명으로 증원되었다. 그리고 위 박사학위과정은 2001년에 10명으로 증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세무전문대학원은 세무학석사학위와 세무학박사학위를 모두 수여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이다. 다른 몇몇 대학교의 경우에는 일반대학원에서 세무학박사 학위만을 수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홍익대학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방식이다. 이 방식을 여러 대학교에서 채택하는 예가 생겨나고 있으므로, 필자로서는 앞으로 세무학박사 학위 취득자가 너무 양산되어 질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여하간에 세무사, 공인회계사, 변호사들이 세무학박사를 지향하는 경우가 늘어남으로써 사계의 질적 수준을 한껏 높이는 자극제의 역할을 필자가 앞장서서 추진했던 세무전문대학원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자부심을 느끼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바이다. 끝으로 사족을 붙인다면, 기획재정부와 같은 정부기관에서 학위 획득을 위하여 국비 외국유학을 많이 나갔는데, 이제는 국내에서 세무 관련분야의 학위 취득을 시도하는 예가 많아졌다는 측면에서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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