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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12. (금)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3)

세무회계의 실무차원 연구와 세무회계론()의 발전 역사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인간사회(구체적으로는 정치 내지 통치가 있는 사회조직)에서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과 조직사회에서 사업으로 돈을 벌면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오래 전에는 그 수확한 생산물의 일부를 세금으로 정부에 내는 물납세(物納稅)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거의 예외 없이 영업실적을 돈으로 계산하여 돈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금납세(金納稅)이다. 다만 돈으로 낼 수 없는 경우에 부득이 그 납부를 물납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생길 수는 있다. 이 금납세는 화폐경제가 발달한 데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까지는 금납세의 경우라도 일정한 체계가 없이 예를 들어 가계부와 같이 제각기 기록하는 단식부기에 의하거나 인정과세(認定課稅)라 하여 세무공무원이 적당히 세금을 매기는 방법으로 과세가 이루어지는 예가 허다하였다. 실제로 1977.7.1. 부가가치세법이 처음 시행되기 전까지는 개인기업의 경우 이같은 과세방법이 널리 보편화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에도 소규모 개인기업만이 해당하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들에게는 복식부기에 의한 회계장부를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므로, 위 인정과세에 가까운 과세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가가치세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함으로써 간이과세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한, 이러한 관행은 개선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로서는 당장이라도 이 간이과세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이 점에 관하여 나중에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기업회계가 복식부기 체계로 이루어지는 사업체에서는 세무회계라는 것이 문제된다. 이 점은 개인기업에서건 아니면 법인기업에서건 간에 마찬가지이다. 다만 공인회계사의 외부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이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건 재정학이론에서 말하는 적정과세가 이루어지려면, 기업의 회계장부는 이른바 회계원리에 터잡은 기록·계산·정리가 충실하게 행하여져야 하며, 여기에 세무조정이라는 절차가 적법하게 가미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같은 세무회계는 높은 이론수준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회계원리의 경우에 예전의 표현으로 ‘2급부기’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세무조정이라는 것도 기록·계산·정리된 회계장부의 내용에 부가가치세법이나 소득세법 또는 법인세법 등의 세법규정에 따라 기장항목별로 조정계산을 거친 금액을 가산하거나(가산조정) 차감하여(차감조정) 이루어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의 세법규정은 민법과 상법 등의 기초적인 법논리를 이해하여야만 명확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렇듯 가감승제(加減乘除/ +-×÷)의 수학적 기초지식을 뛰어넘지는 않는 보통수준의 세무회계이지만, 실무자들은 이것이 어렵다고 흔히 말한다. 그 이유는 논리의 바탕이 서로 크게 다른 회계원리와 조세법률이 뒤얽힌 복합회계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상법 분야의 법학석사 학위논문을 제출한 다음에서야 회계원리를 혼자 섭렵하게 된 데다 세무사시험반 강의를 하면서 비로소 세법과 세무회계를 공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상장법인의 외부세무조정까지도 경험한 필자로서는 이것이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할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초지식의 정리가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내용의 세무회계는 한마디로 회계원리와 기초적인 법논리를 적절히 연계시킴으로써 원만한 해결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세무처리를 담당하는 회계인이라면 누구나 극복하여야 하고 또한 극복하기에 너무 어렵지도 않는 보통수준의 세무회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미국에서 널리 연구되고 있다는 고급세무회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것을 논외로 하기로 한다(솔직히 필자가 잘 모르는 분야이다). 그렇다면 세무회계가 이것을 다루는 경리실무자들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 분야에 관한 실무교육의 체계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것은 고등학교(예를 들어 과거의 상고)의 전문교육에도 문제가 있으며, 대학(예를 들어 전문대학의 세무회계과 및 경영학과와 회계학과)의 전문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이들 교육을 담당할 교육요원을 양성하는 국가 또는 사회의 체계적인 투자가 없었다. 정부에는 적정한 정책수립가가 없었으며, 방향 제시를 제대로 하는 사계의 전문가도 없었다고 이해된다. 이에 더하여 각 대학교에서는 세무회계를 제대로 연구하며 강의하고 저서를 내는 전문교수요원을 확보할 생각조차 못하고 수십년을 허송세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인회계사 제3차시험과 세무사 제2차시험에서 세무회계의 계산문제가 바람직한 방향(대형종합문제)으로 출제되어 왔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공인회계사시험의 경우 제1차와 제2차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들이 최종시험으로 제3차시험을 거쳐야 하였는데, 여기에 독립된 시험과목으로 세무회계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세무사시험에서는 세무회계가 출제되는 최종 제2차시험 과목으로 회계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시험에서는 각각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요하는 세무회계 종합계산문제를 하나씩 출제하는 관행이 계속되었다. 이들 문제풀이를 공부하기 위하여 위 두 가지 수험생들은 400페이지 정도의 수험서를 탐독하고 또한 연습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의 수험생들에게 경쟁(싸움)을 위한 무기를 누가 조달하였는가? 아쉽게도 연구(저술)와 강의를 주로 하는 대학교수 중에는 이러한 조달자가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필자가 경리학원의 세무사시험반에서 강의하기 위하여 서점을 찾은 것은 1969년말경이었다. K대학 J교수의 저서가 유일하게 눈에 띄였다. 집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약 400페이지나 되는 당시로서는 꽤 큰 책에서 이론으로 풀이한 본문은 102페이지 뿐이고, 나머지는 부록으로 편집된 참고자료 뿐이었다. 문제풀이는 전혀 없었다. 그 후 월간잡지에 연재되는 기다란 연습문제 풀이를 발견하였는데, 그 집필자는 신찬수라는 공인회계사였다. 그 후 30년쯤 지나 필자는 2000년 12월경 ‘세무학박사’ 학위과정 제1기생 모집을 위한 면접장에서 신 회계사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70세를 갓넘었다는 그가 뒤늦게 박사학위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기꺼이 원생으로 모셨다. 다시 4년이 흐른 다음에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을 역임하는 중에도 성심껏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그를 필자는 지도교수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도왔다. 그리고 제1호 세무학박사로 교육부에 등록되도록 배려했다. 그가 다시 2018년 10월에 한국공인회계사회의 회계인명예의전당 헌액인으로 선정되었을 적에 축하를 보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월간지 외에 저서로 기여한 것은 그 당시 필자가 거의 유일한 예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무렵 대학의 시간강사로 여러 곳을 오가던 필자는 저녁시간에 세무사시험반에서 강의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세무회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단행본이 없는 것을 확인한 필자는 열심히 자료를 모아 몸소 그러한 단행본을 내기로 작정하였다. 세무회계의 논리체계를 구상하는 데에는 일본 도미오까 유끼오(富岡幸雄) 교수의 『세무회계론강의』가 크게 참고되었다. 대학 졸업반 때부터 필요에 따라 틈틈이 일본서적을 독학으로 공부한 경험이 누적되어 그 해독에 어려움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1973.6.20.자로 세무회계이론편 168쪽과 세무회계연습편 357쪽을 합친 세무회계라는 이름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연습문제는 단편문제와 종합문제를 섞는 방법으로 하되, 그 대부분을 필자가 직접 엮어 만들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문제해설 및 유의점을 따로 상세히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오늘날처럼 컴퓨터로 작업하는 시절이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써서 원고작성을 했다. 그리고 조판공이 글자 하나하나를 놓고서 납으로 만든 활자를 일일이 골라 조판을 하는 시절이라 교정을 보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투자가 있어야 했다. 이렇게 공을 들인 책이 인기가 있어 매년 두세 번씩 판을 거듭하는 경사가 생겼다. 이 경사는 10년 정도 지속되었다. 이런 가운데 1978년 1월에는 『세무회계연습』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기 시작하여 1984년까지 여섯 번이나 판을 거듭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는 못하여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근자에 이와는 달리 세무회계라는 용어가 책 이름에 들어간 단행본이 주로 학원강사를 맡는 몇몇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가 간행되어 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필자가 강조하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종합문제 위주의 세무회계문제를 다루는 저서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인회계사시험과 세무사시험에서 종합문제를 출제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의 배경에는 종합문제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전문연구인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도사리고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공인회계사시험과 세무사시험에서 다같이 종합문제를 출제하지 않게 되었다는 데에 근본적인 까닭이 있다고 본다. 먼저 공인회계사시험에 관하여 언급한다면, 재무부에서 1989년부터 공인회계사 시험체계를 고쳐 제3차시험을 필기시험 대신 면접으로 바꾼다는 발표가 있는 후로부터 이렇게 되었다고 이해된다. 그 후 2차 시험의 세법과목에서 실제로는 단답 형식의 세무회계문제를 7~8문항씩 출제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세무사시험에 관하여 말한다면, 기획재정부 산하의 세무사시험 관리를 모종의 이유로 세무공무원교육원으로부터 산업인력공단으로 넘긴 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대중정부 때에 세무사 합격자를 매년 700명 정도로 지나치게 늘리기로 한 약간은 엉뚱한 방침 때문에 채점이 어렵기도 하고 점수차가 큰 종합문제를 멀리하면서 4~5문항씩 단답형으로 출제방식을 바꾸게 된 데에서 결정적인 원인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적정한 출제문제를 생산할 수 있는 인력부족이 문제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종합형 대형문제를 소형의 단답형으로 바꾼 것이 문제될 일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단답형 문제를 무수히 다루어 본 수험생이라도 종합대형문제를 다루어보지 않는다면 높은 수준의 세무판단이 가능한 우수합격자로 거듭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세무사시험에서 여러 해 동안 세무회계 출제를 경험한 적이 있는 필자로서 확신에 찬 결론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세무판단력을 구사하는 엘리트 세무사를 많이 배출하려면, 한국세무사회가 보다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하여 합리적이고도 수준이 보장되는 출제요원을 양성 내지 발굴함과 동시에 과거와 같은 대형종합형의 세무회계문제를 시험에서 반드시 출제토록 하여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모자란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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