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12.05. (목)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5)

1975년 국세기본법의 등장과 국세기본법의 의미 및 위상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 1975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국세기본법(1974.12.21. 법률 제2679호)이 등장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세법이 하나 더 갑자스레 만들어진 정도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모든 개별세법 전부를 아우르는 세법 중의 헌법이 새로 생긴 것이기도 하고, 모든 개별세법의 기본이 되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규율하는 다분히 원리원칙적인 법률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법률이며, 다른 여러 개별세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본적이고 또한 공통적인 사항을 규율하는 법률인 것이었다.


이 법률의 제1조 목적규정에는 당초에 ‘국세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 및 공통적인 사항과 위법 또는 부당한 국세처분에 대한 불복절차를 규정’한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2010.1.1. 시행의 개정법률에서는 ‘국세에 관한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사항과 납세자의 권리·의무 및 권리구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식으로 표현이 바뀌긴 하였지만, 그 대체적인 의미는 같은 것들이었다. 이들 규정에 관하여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점은 앞 부분에서 말하는 ①기본적인 사항 ②공통적인 사항을 규정한다는 것과 뒷 부분에서 말하는 불복절차 또는 권리구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것을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앞의 ①과 ②는 다른 개별세법의 규정내용과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뒤의 불복절차나 권리구제에 관하여는 별도의 개별세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국세기본법은 당초에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및 부가가치세법과 같은 내국세법을 관통하는 기본적이거나 공통적인 내용을 규율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관세법이나 지방세법과 같은 내국세법이 아닌 개별세법까지도 함께 널리 규율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0년을 전후하여 ‘지방세기본법’이 별도의 법률로 제정되었으며, 관세법에서는 관세기본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지 않고, 그 제1장 총칙편에 국세기본법의 규정내용 일부를 필요한 범위 안에서 각색하여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세기본법은 마침내 명실공히 내국세에 한정하는 규율범위를 가지는 내국세기본법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 국세기본법의 모델이 된 법률은 일본의 국세통칙법(國稅通則法/ 1962년 시행)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우리처럼 ‘지방세통칙법’이라는 식의 법률을 만들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일본은 보수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이다.


위 국세기본법에 관하여 당시의 재무부 세제국 총괄과에서 해당 초안이 손질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초라고 기억된다. 그 때에 필자보다 7년 선배이고 고향에 있는 농업협동조합의 직원으로 일하시던 고종4촌 형님이 말씀하시기를 위 재무부에서 근무하시는 이관숙이라는 남자분이 중학교 동기동창이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을 무턱대고 방문하게 되었었다. 그 분은 나의 시골 중학교 선배이기도 했으므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 때에 알고 보니까 그 분과 정성조라는 동료 직원이 함께 국세기본법의 정부입법 초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두 분은 모두 공인회계사 자격증의 소지자였다. 또한 이 분들은 상경계통의 대학을 졸업하신 준재들이었다. 하지만 법학을 전공한 분들은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의 세제국에는 법과대학을 나온 법학도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돌이켜볼 만한 과거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당시의 세제과장을 포함하여 30명쯤 되는 세제국 직원 중에 법과대학을 나온 직원이 한명도 없는 가운데, 국세기본법을 비롯하여 종합소득세제를 새로 도입하는 소득세법이나 종래의 영업세법을 없애는 대안으로 부가가치세제를 도입하는 새 법률의 초안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특히 국세기본법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내용이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법과대학 출신이 전혀 없이 정부의 입법안이 손질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입법수준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점은 현재까지도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국세기본법은 물론이고 국세에 관한 모든 법안들 수십 개가 무더기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중에서 부가가치세법만은 당시에 일본법의 모델이 없었으므로(일본은 1988년말에서야 ‘소비세법’이라는 이름으로 부가가치세법을 제정하여 공포 즉시 시행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법률의 제정과 시행은 2년 반이나 늦춰지게 되고 말았다(그 시행일은 1977.7.1.).


우리가 만약 법률의 제정이라는 측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문명국이 되려면, 사전에 학자들의 관계논문이 발표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복수로 발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나서 그 내용에 관한 찬반의 논쟁이나 토론 및 공청회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관계논문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필요에 따라 정부 당국자만이 앞장서서 법안들이 요리되는 것이 예사이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그 어떤 조세법률에 관하여서건 간에 사전에 그 입법론에 관한 관계논문이 발표된 예는 지금까지 한건도 없었다. 그 책임의 소재는 조세법을 전공했다고 자부하는 필자에게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변명하자면 필자의 경우에는 상법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의 시간강사를 맡고서 5년 정도 되었으며, 조세법 연구를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나라 전체에서 경제발전에 따른 인재육성이 준비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해 왔다는 얘기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일본의 선례가 있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위 두 분 정도의 나이라면 초등학교(일제강점기의 소학교) 3학년 정도의 일본교육을 받았을 터이므로, 일본법의 원문을 상당한 정도 해독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당시는 일본어를 잘 아는 선배들도 주위에 많이들 계실 때였으므로, 어렵지 않게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때와는 달리 근자에는 일본법을 직접 읽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므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일본법을 참고로 하는 정부당국자는 현재 거의 없는 셈이다. 마침내는 우리의 독자적인 실력으로만 입법작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법의 선례가 없는 여건에서 영국이나 독일법의 선례만을 놓고서 우리의 신설 법률을 추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가가치세법의 경우가 이를 웅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국법은 원문을 읽을 줄 아는 인재가 현장에 있긴 하지만, 영미법의 조문체계는 우리 것과 다른 점이 너무 많은 탓으로 우리의 법체계와 영국법의 체계를 조화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독일법의 조문체계는 일본이 거의 원형대로 받아들인 체계라서 그대로 번안만을 하더라도 무방할 일이었지만, 독일법의 원문을 읽을 사람이 없었던 것이 1973년경의 현실이었다(현재에는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세법을 제대로 전공한 현역교수가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에는 현재까지도 부가가치세법을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프랑스법은 그 조문체계가 우리와 너무 달라 참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사족을 붙이자면 겨우 2~3년전쯤 문재인정부에서 일본법의 규정례가 없는 양도소득세 관계규정을 부동산투기를 막는다는 이유로 몇십 차례에 걸쳐 너무 자주 고친 적이 있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입법기술이 모자란 당국자들이 법조문을 지나칠 정도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세무상담을 맡는 세무사들도 해당 조문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여기에 세무사들이 힘든 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에 대하여 국세청 당국자들이 사후에 과잉대응을 하는 사례가 많이 생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양포세무사’(양도소득세를 포기하는 세무사)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도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또한 쉬운 세법을 만들자고 외치던 당국자들이 왜 그랬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이상과 같은 우여곡절을 거친 국세기본법이 시행된 결과 우리의 조세법체계가 한 단계 선진화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세법을 들추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야 할 구체적인 해당 조문 외에도 국세기본법의 관계조문을 동시에 섭렵하는 습관이 생겼고, 조문 해설서에도 국세기본법의 관계 조항을 상세히 언급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저술에서 국세기본법의 내용을 다루지 않는 예가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국세기본법의 의미와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알기 쉬운 얘기로 국세기본법은 세법 중의 헌법과 같다고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말에 엄밀하게는 어폐가 있다. 전체 법체계에 있어 헌법에 반하는 개별법률은 헌법재판소(헌재)의 위헌법률심판을 통하여 위헌이라 선언되면 해당 법률이 효력을 잃게 되는 효과가 생기지만, 반대로 개별세법의 어느 조항이 국세기본법의 규정에 어긋난다고 선언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세기본법은 법인세법 등과 같은 개별세법과 동순위의 법률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세기본법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첫째로 국세기본법은 국세(내국세)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율하는 법률이다. 이를테면 같은 법 제14조 이하의 국세 부과의 원칙과 제18조 이하의 세법 적용의 원칙 그리고 제21조의 납세의무의 성립과 제22조 납세의무의 확정과 제26조 이하의 납세의무의 소멸에 관한 규정 등은 기본적인 사항에 해당한다. 제35조 이하의 국세 우선권에 관한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둘째로 국세기본법은 국세(내국세)에 관한 공통적인 사항을 규율하는 법률이다. 이를테면 같은 법 제4조 기간의 계산 제5조 이하의 기한에 관한 규정 제8조 이하의 서류의 송달에 관한 규정 등은 공통적인 사항에 해당한다. 셋째로 국세기본법은 납세자의 권리구제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는 법률이다. 과거의 법률에서는 불복절차를 규정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들 두 용어는 일맥상통하는 것들이다. 같은 법 제7장(제55~81조)의 규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국세기본법은 내국세에 관한 다른 모든 개별세법에 대하여 어떠한 위상을 지니는가? 한마디로 앞것은 일반법이며, 뒷것은 특별법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원리적인 성격을 재무부 당국자들은 거꾸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2019.12.31.의 법개정이 있기까지 제3조의 제1항(제1호~제8호)과 같은 불필요한 규정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제1항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을 저서 『조세법학총론』의 초판(2009.5.12.) 때부터 제10판(2017.3.27.) 때까지 줄곧 펼쳐왔었다. 이에 대한 메아리가 없어서 (사)한국조세법학회가 기획재정부에 매년 제출하는 조세법률개정건의안에 너댓번 건의를 올린 일이 있었다. 이 건의가 실제로 반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019.12.31.자의 개정법률에서 제3조 제1항의 규정이 “국세에 관하여 세법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