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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12.03. (화)

[연재]세법·세정·세무 분야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11)

우리나라 상속세와 증여세를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들

 

한국세정신문은 창간 58주년을 맞아 조세법학계 거목에게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후일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대학 세무학과의 출범, 종합소득세제 및 부가가치세제 뒷얘기, 국립세무대학 출범과 폐지, 자료상,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세무사시험제도, 상증세, 세무행정, 지방세, 변호사와 회계사·세무사 등 조세 역사 주요 사건에 얽힌 뒷얘기를 반추하며 세법·세정·세무에 대한 지향점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세무회계학 및 조세법학의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다한 송쌍종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로부터 '세법·세정·세무 분야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아온 바에 비하면, 그들 세수액은 보잘 것이 없는 편에 속한다. 해마다 발간되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국세청에서 거두어들이는 전체 세수액 중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0.5%를 약간 넘는 정도의 실적을 보여 왔다. 그리고 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곧 1%를 약간 넘는 정도였다. 줄잡아 얘기하자면, 상속세와 증여세를 합하여 2% 수준을 넘지 못하는 초라한 정도의 비중이었다. 


그런데 상속세를 내는 납세인은 별로 많지 않는 편인 데에 비하여 증여세를 과세당하는 납세인은 상속세의 경우에 비하여 꽤 많은 편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산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개인들 가운데에서도 가끔은 증여세를 걱정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에서 증여세는 상속세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이렇듯 이들 둘은 서로 다른 세목들인데도, 이것들을 함께 검토하여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둘 다 무상취득한 재산에 관하여 납세문제가 생기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절세작전을 구체적으로 펼치려 하는 경우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납세인구가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하는 상속세가 지금까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아 온 까닭은 그 문제되는 세금액수가 상속인별로 대단히 크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세금탈루의 가능성도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내지 재벌기업의 총수가 세상을 하직한 경우에는 그 과세대상인 상속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세금액수는 실제로 얼마 정도일까에 관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십상이다. 또한 이 경우에 특정인 한 사람에 관계되는 세금액수보다는 다른 재벌총수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는 데에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필자가 세법공부에 눈을 뜰 무렵에는 상속세법의 연거푸 되풀이되는 개정에 관하여 얘기하는 이들이 많았었다.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시간강사로 뛰어다닐 무렵인데, 한두 학교의 강사료만으로써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 때가 대학생활 6년(2년 휴학)과 석사학위 과정 2년을 거치기까지 8년간 변두리 입시학원의 영어강사로 진력하던 생활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종로의 경리학원에서 회계원리를 감히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이러한 전향을 한 동기는 K대학의 상법교수로 계시던 대학의 대선배 한분의 우연한 조언으로 상법학도가 되려면 회계학에 눈떠야 할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각성을 하게 된 데에 있었다.


그 후 10개월쯤 지나서 같은 학원에 세무사시험반이 개설되어 재정학과 회계학이라는 두 시험과목을 학원장의 권유로 혼자서 도맡게 되었다. 이들 두 과목을 모두 공부하면서 강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아쉬운대로 험난한 고비를 간신히 넘기게 되었다. 그 아침반의 수강생들 중에는 현역인 국세공무원과 개업 세무사의 사무장 및 중견기업의 회계책임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수업이 끝난 다음 다방에서 차(‘모닝커피’ 등)를 대접받으면서 세상얘기와 사회경험담을 들을 기회가 꽤나 많았던 덕분에 세무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전무한 필자로서는 간접경험을 통하여 지나간 얘기처럼 들었던 세금 관련의 일화들이 나중에는 매우 보람있는 자양분이 되었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지금도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한다.


그 때에 들은 얘기로 우리나라 상속세법은 S그룹의 L회장이 절세대책을 강구하면 그것을 막기 위한 정부당국의 법개정이 뒤따르는 시소게임(seesaw game)의 연속물이라는 것이 있었다. 훨씬 나중에 상속세법을 검토하여 보는 과정에서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경험이 있다. 그런데 막상 위 L회장이 대대적으로 절세대책(?)을 펼친 것은 1971년 2월의 일이었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커다란 사건이었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기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재산(주식 및 부동산) 180억원을 3등분하여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언론보도를 참고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즉 S문화재단에 60억원을 희사하고, 직계자녀 3남4녀와 유공사원에게 60억원을 양여하며, S사회공제회에 10억원을 희사토록 하고, 나머지 50억원은 훗날 유익한 사용방도를 강구하기로 하면서 자신이 보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상의 각 금액은 당시의 금액이므로,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현재까지 대략 1,000배 정도 올랐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와 같은 재산정리 선언을 어떠한 이유로 그리고 어떠한 목적으로 자행했는가에 관하여 필자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다만 그 무렵 필자의 강의를 듣던 S문화재단의 말단 회계직원 한분이 나에게 들려 준 얘기를 회상하면 다음과 같다. 즉 위 재산정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10억원이 해당 재단에 현찰로 입금되었는데, 얼마 후에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1억 원을 제한 나머지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무엇인가 작전이 개재되었다는 짐작을 한 것 이상으로 알 수 있는 바는 현재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현금은 증여세의 부담이 없이 자녀 등에게 은밀하게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과는 다른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납득이 갈 만하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자못 흑막을 연상케 하는 외관을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는 두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국가사회적인 관점에서 추후로 용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뜻이다. 그 하나는 S전자회사를 설립하여 메모리반도체산업에서 세계 으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반도체와 바이오 등 가장 중요한 먹거리 중의 하나를 우리네 국가사회에 제공한 공로가 있다는 점이다. 이 S전자는 L회장만이 투자할 수 있는 거대사업이며 미래 먹거리 사업이라면서 당시의 아남전자 김주채 사장이 적극 권유한 바에 힘입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이밖에 해마다 정초에는 일본에 머무르면서 끊임없이 정보수집을 한 결과가 아닌가도 짐작해 본다.


그 둘은 L회장이 1988년에 타계했을 적에 고지받았던 176억원보다 무려 680배에 이르는 12조원 정도의 상속세를 그 후계자인 아들 LKH 사장의 2020.10.25. 임종 후에 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S전자회사의 대성공에 따른 여파가 아닐 수 없다고도 판단된다. 이밖에도 1조원의 사회공헌을 하였으며, 2조~3조원에 이르는 미술품의 기부금 등 모두 15조~16조원을 사회에 환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총재산의 60%를 넘는 규모라는 것이다(이상 2021.4.28. 연합뉴스를 요약한 것임). 이 보도를 보았을 적에 필자는 L회장이 생전에 절세작전(?)으로 성공하여 물려주었던 재산을 아들이 숨김없이 국가와 사회에 환원한 셈이라고 이해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기업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는 기업은 돈만을 챙기는 이윤추구의 화신임에 대하여 비기업인은 마지못해 기업에 기대는 소극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립적인 구도로 기업을 이해하는 사회적인 관념이 지배하고 있어 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위 양자가 상호협력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귀한 존재들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점에 관하여 둘 다 전통적인 관념을 수정하는 새시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가 전세계 무대의 상위권에 진입하고 있는 저간의 추세와 발맞추어 새로운 전진을 기약하는 전환점(모멘트/ moment)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증여세에 관하여는 필자로서 확신을 가지고 얘기할 거리가 별로 없는 처지이다. 그러므로 간단히 두 가지만을 거론하기로 한다. 첫 번째는 과거에 증여세를 탈루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른바 ‘자금출처조사’에 대비하여 금융기관과 야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이다. 이를테면 숨겨놓은 돈을 아들에게 남몰래 증여하면서 예금을 하고, 그 아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차입하는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은행은 실질적인 대출이 없이 이자수입만을 누리고, 고객은 자금의 출처를 대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이 상태를 몇 년만 유지하면, 만사는 형통이었다. 이와 같은 탈법은 전산기제의 발달로 봉쇄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세무당국의 의지에 달려있는 일이다.


두 번째는 증여세 폭탄에 대응하여 싸웠던 일화 하나이다.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황필상 박사는 1973년 26세 늦깎이로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프랑스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땄고, 1984∼1991년에 한국과학기술원(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91년 생활정보신문(‘수원교차로’) 창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갖은 노력 끝에 수원교차로는 140명 직원이 매일 220면을 발행하는 건실한 사업체로 거듭났다. 이어 2002년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해 수원교차로 주식 90%(10만 8천주)를 모교 아주대에 기증했다. 시가 177억여원에 달하는 큰 액수였다. 학교는 ‘황필상 아주 장학재단’(현 구원장학재단)을 설립, 전국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원했다. 2008년까지 19개 대학의 733명의 학생에게 41억여 원 상당액이 지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당국은 2008년의 기부를 문제삼아 위 재단에 140여억원을 증여세를 부과했다. 황 박사는 연대납세의무자로 지정돼 약 20억원의 개인재산을 강제집행 당하기도 했다. 재단은 2009년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그 기부가 증여세를 회피하려는 의도로 볼 수 없다며 장학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경제력 승계 위험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수원세무서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경제력 세습과 무관하게 기부를 목적으로 한 주식 증여에까지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문화일보 2018.12.31. 지면관계로 약간씩 첨삭함.)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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