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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9.10. (수)

"박 계장, 빽 한번 써봐" (64)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하기야 이 신문은 한달에 한두번 발행을 하는 소규모 신문으로 독자층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이러한 터무니 없는 제목으로 보도돼 누구 한사람이라도 이런 기사를 본다면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됐다.

 

그 신문사 간부를 잘 안다는 총무과장과 같이 신문사를 찾아갔다.

 

그들은 이번 기회에 세무서를 딛고 한건 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내일 모레 연속으로 세무서 직원들의 각종 비리를 사례1, 사례2 하는 식으로 보도하겠다면서 가판(街販)을 보여준다.

 

나는 회장님이라는 분을 만나 다른 곳도 아닌 천안에 소재하고 있는 신문이 같은 지역관청을 이런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되며, 오래전의 사례들을 그때 처리하지 않고 지금 거론한다는 것은 공갈로 밖에 되지 않는 것임을 지적하고 굳이 보도하려면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해주고 나와버렸다. 다음날 신문에 보도하지 않았다.

 

나는 천안에서 잘 한다고 이름이 나있는 한정식 집에 주재기자 모두를 초청해 저녁을 대접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러분! 제가 천안서에 '94년8월3일 오후 세시에 부임했습니다."

 

"그날 오후 세시 이후에 발생되는 사건은 여러분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대신에 그 전의 것은 없었던 걸로 해주십시오."

 

"이번 사건도 여러분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고 잘해보려고 우리 직원을 고발한 것입니다."

 

"제 자식을 고발하는 데가 있습디까? 이러한 저의 결심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하여 거기 모인 기자님들이 동의를 해줬고 박수로 격려도 해줬다.

 

세금도둑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얘기를 해야 하겠다.

 

새로운 세무서에 오면 나는 습관적으로 챙겨보는 것이 '근무상황부'와 '고액자료대장'이다.

 

참으로 답답하다.

 

전에 여기서 근무하던 담당자라며 몇사람이 찾아왔다.

 

고지하면 여럿이 다친단다. 이 녀석들 봐라!

 

상속세 자료인데 어림잡아 9억∼10억원 가량 세금 추징이 예상되는 자료가 처리되지 않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전임서장이 결재를 한 지가 오래됐는데 고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담당주무를 불러 심하게 꾸중을 하면서 빨리 D/B자료를 확인해 재산이 있으면 즉시 사전압류를 하고 난 다음 고지서를 직접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어이 김 계장! 일전에 지시한 사전압류 건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서장님 그거 압류하거나 고지하면 문제가 큽니다" 한다.

 

"…" 이런! 뭔 문제가 있다면 며칠전 지시할 때 하면 될 것을.

 

참으로 답답하다.

 

전에 여기서 근무하던 담당자라며 몇사람이 찾아왔다.

 

고지하면 여럿이 다친단다. 이 녀석들 봐라!

 

"그럼 어떻게 하면 쓰것오?"

 

전라도 사투리로 물어보니 대답을 못한다.

 

나는 한번만 더 그따위 소리를 하면 본청 감찰에 연락하겠다고 해줬다.

 

그러는 사이에 납세자는 압류대상 물건들을 모두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바꿔 놓아 버렸다.

 

나는 즉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남은 재산을 압류했다. 직원들 모두 태업을 하는 것처럼 슬로우 모션인데 나 혼자 그렇게 설치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놈들을 감찰에 연락해 조사를 한번 시켜볼까 하다가 세금만 다 받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바꿨다.

 

그렇지만 그들의 일처리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납세자는 전액을 납부했고 나는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기억한다.

 

69. 진정 투서 좀 그만 내소

 

주차장 문제를 해결해 놓고 보니 진정, 투서문제를 해결해야 천안세무서가 숨 좀 돌릴 것 같았다.

 

좀 심하게 말해서 매일 한 두건씩의 진정, 투서, 고발 등의 민원이 접수가 돼 직원들이 그 일을 처리하느라 정말로 다른 일을 볼 틈이 없었다.

 

진정 등 민원업무는 처리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구미생활 일년동안 단 한건도 그런 명목으로 접수된 것이 없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옆집은 이번에 뭘 해서 재미봤다.'

 

'어느 회사는 이런 일이 있었다.'

 

'왜 하필 우리 가게에 조사를 나오느냐?'

 

정말 정신이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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