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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9.10. (수)

[시론]저성장 시대의 세정운용 방향

곽태원 서강대교수

세금을 늘려서 서민들을 지원하고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언제나 대중들의 환영을 받는다. 인간답고 따뜻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매우 음험한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려면 부자들에게 더 내게 하는 것이 순리다. 근로자보다는 자본가에게 더 무겁게 부담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처방들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있었던 소위 IMF 사태 이후 우리는 매우 급격한 개방화를 경험하고 있다. 개방화는 우리같은 나라가 먹고 사는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런데 조세정책에서는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자본소득에 대해서 중과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높은 세금 때문에 국내 투자의 세후수익률이 떨어지므로 자본은 자연스럽게 외국으로 빠져 나간다. 이와 함께 국내의 세전수익률이 올라간다. 그 결과로 높아진 자본소득세를 내더라도 세후수익률은 자본소득세를 올리기 전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세금을 분명히 냈지만 실제로 세후소득이 줄어들지 않았으므로 세금을 부담하지는 않은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국세청에 들어온 세금을 실제로 누가 부담한 것인가? 자본공급의 감소로 줄어든 일자리 때문에 임금이 떨어졌거나 일자리를 잃어버린 근로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떠넘겨 받은 것이다. 과도한 누진소득세는 자본뿐 아니라 고급인력 유출까지 가져올 수 있다. 자본과 고급인력이 빠져 나가면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실업과 빈곤이 확대된다. 따뜻하게 느껴지던 정책이 사실은 우리 경제를 겨울로 몰아넣는 배신자로 둔갑하는 것이다.

 

자본이 떠나가는 것이 세금 때문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는 노조, 그러한 노조활동을 방조하는 정부, 말이 되지 않는 규제들, 전국적으로 균형을 이룬 고지가, 질이 떨어지는 공공서비스 등 기업들이 한국을 떠날 명분은 수없이 많다. 세금은 이러한 많은, 어쩌면 더 중요한 요인들 속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금은 이것들의 맨위에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조세부담률을 선진국 근처까지 올리려면 노조, 규제, 공공서비스 등이 먼저 선진국수준으로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세금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으면 저성장의 겨울이 급하게 다가올 것이고 더 많은 서민들이 고통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령화의 급진전은 재정수요 폭증을 가져온다. 안보와 통일문제는 우리 재정의 커다란 위험요인으로 상존할 것이다. 그러나 조세부담률을 올리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성장을 위축시키면서 재정수요만 더 크게 하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이러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 차입은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길은 오직 하나라고 생각된다. 정부 지출증대요인을 과감하게 정비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책임질 수도 없는 많은 사업들을 벌려놓고 그러한 사업들을 돌이킬 수 없게 하려고 억지를 쓰는 모양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부채가 급등했고,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수도 많이 늘었다.

 

이것들이 서둘러 시정돼야 한다. 방만한 정부 지출부터 정비하고 비효율적인 조세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이념문제를 초월한다. 우리 사정은 이념논쟁으로 세월을 보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저성장의 함정을 벗어나야 조세수입도 늘고 복지도 확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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