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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하여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대선을 치루면서 복지의 밀물이 우리 사회를 뒤덮어 이제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돼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서구 선진국들 같은 복지국가가 바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현상은 주위에서 복지 확대에 매우 회의적이던 사람들도 내심 복지 수혜에 기대를 갖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관찰은 체계적인 것이 아니므로 논리적 추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으나 복지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혼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주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좀 긴 시각에서 본다면 복지의 확대는 당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구돼야 할 방향이라는데 대해서 이론이 있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통크게 약속한 복지 확대의 범위와 속도는 성급한 것이라는 생각 또한 거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복지정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면서 펼쳐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논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재원 조달이 가능한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복지정책의 운용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여러가지 경쟁적인 대안들간에 복지 재원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일단 재원이 확보돼야 생각할 수 있는 과제이다.

 

복지재원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로 가장 기본적인 대안은 증세이다. 세목을 신설하거나 기존 세목의 과세대상을 확대하는 방법, 기존 세목의 세율 인상이나 비과세․감면의 축소 그리고 지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지하경제의 축소를 위한 노력 등이 증세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의 재원은 차입이다. 차입은 채권을 누가 인수하는가에 따라 효과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외국인에 의한 인수와 내국인에 의한 인수는 거시경제나 세대간 분배에 미치는 영향이 좀 다를 수 있다. 한국은행에 의한 인수, 즉 통화 증발에 의한 인수는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주어 왔으나 현재와 같이 미․일의 양적 완화 공세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는 하나의 고려할만한 대안임에 틀림이 없다. 세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복지 지출비중의 확대 또는 복지 지출 내의 재배분을 통한 효율성 개선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의 문제는 동태적인 문제이므로 위의 세가지 대안도 동태적인 관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들 중에서 차입에 대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차입이라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입원이 될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출의 성격이 일시적이고 긴급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르거니와 복지처럼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할 지출을 차입으로 조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기부양 목적의 추경재원으로서는 차입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수 있어도 차입재원을 복지지출 증대에 투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간접적으로도 차입과 복지지출 증대가 연결돼서는 안된다.

 

지출의 구조조정을 통한 복지재원 확보는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가치가 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보관련 지출수요의 증가 등 재정여건이 매우 불투명하고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지출항목이나 행태를 색출하기 위한 노력은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한 노력보다 더 강화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증세 역시 중장기적 시각에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증세가 조세베이스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한 증세는 당장의 수확을 늘리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금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심지어 고사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열매가 줄어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세율의 인상보다는 지하경제 축소와 비과세․감면의 정비에 더 역점을 두는 것도 바로 세금나무 자체의 건강한 성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바로 세금나무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과도한 세무조사 드라이브는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민주화를 빙자한 대기업 때리기,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 여전한 노동시장의 경직성, 안보관련 불확실성 증대 등 세금나무가 심어진 토양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상황에서 세금 열매를 철저히 따겠다고 나뭇가지마저 심하게 흔든다면 세금밭 자체가 황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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