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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중요하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개혁의 덫,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케임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의 저작물들이다.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세계 경제를 바라보기보다는 경제 발전론적 입장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처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의 획일적인 처방은 주로 시장 개방, 자본 자유화, 민영화 등 선진국이 과거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는 선택하지 않았던 정책을 자금 제공의 조건으로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하바드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인 라인하트와 로고프(R&R)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의 비중이 90%를 넘게 되면 경제성장에 있어 급격한 절벽을 만나게 되므로 재정긴축이 매우 중요하다는 논문을 지난 2010년 발표해 세계 정치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매사추세츠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이 같은 자료(20개 선진국의 1946~2009)를 활용, R&R의 결과를 재검증하는 과정에서 코딩 오류와 국가간 평균을 만드는 과정에서 극단치인 뉴질랜드의 1951년 자료를 달리 적용한 결과 경제성장의 절벽은 발견할 수 없다는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초기 자료(국가 부채가 높으면서도 경제성장이 양호했던 시기)가 빠져 있는 부분도 논란이 된다. 결국 과도한 부채가 이자율과 물가 상승을 통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R&R의 논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재정긴축에 대한 과도한 신봉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하면 대한민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중간에 처한 입장에서는 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우리나라를 벤치마킹하려고 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우리의 규제적 환경이나 제도적 여건이 선진국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따라서 획일적인 시장 위주의 처방보다는 어느 정도 정부의 역할을 확보하고 제도 성숙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민간의 영역을 구축하는 수준의 정부역할 강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12일에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간 국가재정 운용의 밑그림에 대한 공개토론회가 9개 부문에 걸쳐 개최됐다. 거시총량, 복지, 산업, 지방재정, 교육, SOC, 농림, 일자리, R&D부문으로 나눠 나라살림의 중장기 계획에 대해 중지를 모으려는 노력이다. 과도하게 작은 정부만을 강조하기보다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농림, 중소기업, 교육, SOC, R&D부문의 옥석이 잘 가려져야 하고 우선순위와 수순(sequence)이 명확해져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는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중앙정부, 지방정부(광역과 기초로 구분해서), 그리고 민간의 중장기적 부담 추계에 기초해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나 단가인상이 결정돼야 한다.

 

교육부문도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인구구조적 변화를 감안한 제도적 틀 수정과 교육복지 차원에서의 무상보육,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학 반값등록금 제도를 구조조정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급자 중심의 프로그램 위주 지원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성과위주 재정지원으로 전환돼야 한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전문대학의 문제에 대해서도 현장 중심 직업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평생학습사회 구현의 생애주기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인천국제공항과 산업은행의 지분매각과 민영화 정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민영화가 공기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와 효율성, 생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세외수입 마련을 위한 민영화 추진은 이제는 경제환경적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과 도로공사 등 SOC 공기업의 요금현실화는 수요관리 차원에서도 시급성을 강조해야 한다. 물가관리도 중요한 정책임에 틀림없으나 과도하게 통제된 공공요금정책은 공기업의 가격 기제를 왜곡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낳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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