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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시론] -2013년 8월의 세제개편안 에피소드-

증세의 정치적 책임 떠넘기기 게임

조원동 경제수석이 최근 언급한 콜베르의 거위 털 뽑기 얘기에서 그 프랑스 재상은 납세자가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는 종류의 세금을 좋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정반대적인 특성을 좋은 세금의 조건으로 꼽은 이가 있다. 아담 스미스 이후 여러 저명한 학자들이 좋은 세금의 조건을 나열했지만 ‘정치적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특성을 좋은 세금의 조건으로 말한 사람은 경제학자 Stiglitz 뿐이다. 누가 세금을 부담하는지가 투명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그 세금의 사용으로 인한 혜택의 귀속이 명백해야만 그 세금을 제안하거나 확장․축소한 정치집단에 대해 유권자들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세금에 대한 납세자들의 선호도가 잘 표시된다는 것이며 현실의 간접민주주의제도의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물론 여기에 부합되는 세금은 간접세보다는 직접세일 것이다.                

 

2013년 8월 우리 정부는 세제개편안에서 소득세의 일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을 통해 근로소득자 소득상위계층과 하위계층간의 형평성을 추구했다. 그리고 근로소득자 소득상위계층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고소득계층인 법인소유자들에 대하여는 큰 혜택을 선사했다. 대기업에 집중된 투자세액공제의 혜택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표출되자 마지못해 투자세액공제율을 대․중소기업에 차별적으로 하향 조정하는 대신에 기업 소유자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감몰아주기 과세를 무력화시키고 중견기업에 대해 가업상속공제제도의 확대해 적용하는 방법으로 국가재정 조달체계에서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대기업 및 기업 소유자에 대한 호혜적 과세체계를 변함없이 유지시키기로 한 것이다.   

 

과세액을 일괄적으로 결정하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정의 필요성은 존재하더라도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사실 기업 지배력을 변칙적으로 증여하는 행태에 대한 과세로서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경제적 기능을 갖는 제도적 요소이다. 가업상속공제제도는 기업이 가업으로 상속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여지는 분야로 국한돼야 입법취지에 부합되며 막연한 개연성의 존재로 가업상속공제가 허용된다면 기업의 모든 대물림은 과세에서 제외되고 상속증여세의 존재는 부인되는 것이다.

 

이번 세법 개정에서 근로자에 대한 과세에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은 보완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형평성을 살리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을 가진다. 비전업농민 8년 자경 양도세 감면 배제와 종교인이 소속 종교단체로부터 종교활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를 과세하는 것 역시 적절한 조처이며 종교인 과세는 2015년으로 미루지 말고 2014년부터 바로 시작하고 향후에는 근로소득으로 과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해외투자 기업 및 개인에 대한 과세자료 제출의무의 강화는 현 시점에서 매우 필요한 조처이나 내용이 매우 부족했다. 해외소득 및 재산에 대한 정보파악 강화 조처는 소극적 개정에 그쳤다.   

 

정부의 세법개정안 발표와 근로소득자들의 반발 이후 보여준 정당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공약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그들의 맨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일부 시민단체의 주도로 근로소득자들의 (1차적) 반발이 언론 지면을 차지하자 민주당은 재빨리 여기에 편승한다. 민주당의 입장이었던 MB감세 철회․부자증세의 입장과 이번 세법개정안이 공유하는 내용이 무엇이고, 차이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고. 그러나 백미는 청와대의 신속한 ‘원점에서 재검토’ 지시였다. 마치 세법 개정안이 기재부 세제실의 단독작품이었다는 듯이.

 

이 나라에서 주로 정권을 담당해 왔던 한 정치집단과 가끔 정권을 담당해 본 적이 있는 또다른 정치집단의 행태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모습은 (증세를 하고) 최소한의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는 공약을 증세에 대한 정치적 책임까지 짊어지면서 수행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는 점이다.

 

세금부담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나갈 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부자들은 세금을 이전보다 많이 더 내야 하고 소득 중위계층의 납세자들도 조금씩은 더 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복지수준의 확충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책임있는 정당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이번 세법 개정안이 법인 소유자들과 같은 큰 부자들에게는 혜택을 주면서 소득 중상위 근로소득자들의 세부담을 늘린 것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소득 중상위 근로자들의 세금이 다소 늘어나는 것 자체는 감내해야 하는 일이며 민주당이 마치 본래부터 이들에 대한 증세에 반대한 것처럼 한다면 장기적인 정책 추진에 어려움만 가중될 것이다. 

 

증세에 대한 납세자들의 1차적 반응은 통상 어느 나라든 부정적이다. 그러나 정치집단이 지금까지 납세자들의 1차적(표피적) 반응에만 집중했다면 전세계 민주국가에서 세금은 소멸했을 것이다. 이번 9월에 연방의회 선거를 앞둔 독일에서 녹색당은 올해 상반기 소득세율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고 그 이후 정당 지지율은 더 올라갔다. 건전한 재정 유지와 꼭 필요한 용처에 사용된다는 점이 확인되는 증세를 선거전략적 고려로 선거 후로 미루지 않고 미리 밝히는 자세에 유권자들은 더 점수를 주는 것이다. 선거 전략적으로 보더라도 책임을 짊어지는 정당의 자세가 갖는 가치는 크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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