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5.08. (수)

세금제도의 중요성ㆍ고려 망하고 조선건국

김익래<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지난 45년간 학교․경제단체․기업 등에서 현행 세법 해설이나 절세대책에 대해 강의해 왔지만, 고려나 조선시대 세법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최근 어느 세미나장에 가서 이정철 박사(한국국학진흥원 근무)로부터 조선시대의 세금제도에 대해 강의를 듣고 예나 지금이나 세금제도는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조선시대의 조세제도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다.

 

이정철 박사는 조선시대 세제인 ‘대동법’을 연구해 학위를 받았고, ‘조선 최고의 개혁 대동법’과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들)’이라는 책을 출판해 세금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책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국가란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성인남성에게 국가는 군대 소집영장을 발부하는 존재이다. 또 법으로 금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는 잡아들여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존재이며, 세금 명목으로 월급의 일부를 떼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의 수입이 일정 수준에 못 미치면, 그에게 기초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돈을 지급하는 존재이다. 현재의 한국도 그런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국민에게 국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최소한 두가지는 국가의 필수적인 기능 혹은 역할이다. 첫째는 세금 문제이고, 둘째는 형벌 문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국가이든 이 두가지를 빠뜨리는 나라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이 두가지가 없다면 이미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어떤 나라나 정권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봐야 할 핵심적인 사항은, 그 나라의 세금제도와 형벌제도이다. 좋은 나라는 두 제도가 국민들에게 좋게 돼 있는 나라이고, 나쁜 나라는 당연히 그 반대이다. 그리고 형벌제도보다는 세금제도가 더 많은 국민들에게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즈음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 ‘정도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조선 건국의 주역을 태조 이성계나 태종 이방원이 아니라 정도전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고려 말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흥사대부들이 500년 가까이 지속된 왕조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고려가 무너지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이겠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세금제도의 문란과 붕괴였다.

 

고려말 국가의 지배층은 그들의 욕심을 통제하지 못해, 세금제도 운영에서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를 들어 농부 A는 농사를 지어서 나온 소출의 일부를 중앙정부에 납부하거나 아니면 관리 B에게 납부했다. 중앙정부가 농부 A가 내는 세금을 받아서 관리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던 이유는 곡물 운송에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A가 B에게 직접 납부함으로써 운송기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물론 이때 B는 A땅의 소출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중앙정부로부터 받았다. 이때 중앙정부에 세금을 내는 땅을 공전(公田), 관리 B에게 내는 땅을 사전(私田)이라고 불렀다. 고려 말에 지배층은 이미 공전이나 사전으로 지정된 땅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만약 그 땅이 사전이라면 기존의 B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C가 또다른 자격으로 세금을 거뒀고, 시간이 지나면서 D, E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결국 농민 A는 농사를 지어도 자신의 몫을 확보할 수 없게 돼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나라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했고, 결국 고려는 망하게 됐다.

 

고려말에 관리가 됐다가 나중에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신흥사대부들은 세금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가 세종 26년(1444)에 성립될 때까지 30년 가까이 걸려 만든 조선의 첫 조세제도인 공법(貢法)이다.

 

공법 시행 200년후 조선의 조세제도가 변질돼 쌀이나 콩으로 내는 세금으로 지주인 양반도 내는 전조(田租)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줄어들어 그 줄어든 만큼을 공물로 힘없는 백성들에게 부담시키는 모순과 공물을 중앙관서에서 직접 받지 않고 특정한 상인 브로커를 통해 받는 방납(防納)제도로 치명적인 부패가 발생해 이를 개혁해 만든 것이 새로운 조선의 조세제도 대동법이다.

 

역사를 통해 세금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봤다. 어느 시대건 국리민복을 위해 지속적인 조세제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