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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3.29. (금)

박인목 세무사 수필집 '갈모봉 산들바람'…일상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옛 추억을 소환해 준, 스팸을 보내온 ‘할 일 없는’ 사람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보내오는 그의 정성을 비로소 알 만 했다. 그는 '할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이제 친구의 성경 말씀 스팸도 결례의 빗장을 풀고 편안하게 받아보고 싶다.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이 가을을 보내기 위해서.”

 

국세청 고위공무원 출신 박인목 세무법인 정담 대표세무사가 ‘갈모봉 산들바람’을 펴냈다.

 

‘어느 행복한 날의 하루’, ‘거기 행복이 있었네’에 이은 3번째 수필집이다. 그는 경계인을 자처한다. 세무전문가이면서도 딱딱한 세법 논리 밖으로 외출해 감성과 밀회하곤 한다.

 

48편의 짧은 글 하나하나에 사소한 것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에서부터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까지를 넘나들고 있다.

 

책은 고향, 유년시절의 추억, 키오스크, 건망증, 청년 자살률, 세종대왕의 통치, 세무사로서의 경험, 역사 인식 등 소재의 폭이 넓다. 폭넓은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일상적인 주변의 이야기와 때때로 엉뚱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동시대에서 고민해 볼 화제와 관점을 녹여 낸다.

 

어린 시절 명밭골 이야기에서 시작해 접두사 ‘개’의 달라진 쓰임새와 통테, 게치매 등 우리말의 뿌리를 탐색하고(참꽃 개꽃), 무인증명발급기 앞에서 기계를 이겼다고 의기양양해 하다가 키오스크로 인해 주눅드는 현실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기계를 이겼다).

 

‘불타는 금요일’에서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더 엿볼 수 있다. 양귀자 작가의 에세이집 ‘삶의 묘약’의 "나는 단 하나의 도구상자에서 연장을 고르고 있다. 그 연장들의 이름은 일상성(日常性). 내 글쓰기는 초라하나 장엄하고, 비굴하지만 눈물겨운 나날의 일상에서 길어 올려진다. 그것이 나의 문(門)이다"는 소절을 소개하며 일상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다는 작가의 말이 나를 길러 올렸다고 고백했다.

 

“사람의 민얼굴과 땀내를 찾아내는 것이 변함없는 꿈”이라고 밝힌 그는 정담(情談)이라는 그의 호처럼 따스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인생의 교훈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책은 고단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삶의 향기, 가족에 대한 애뜻한 사랑 등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녹여 내며 삶을 가꾸는 글쓰기의 힘을 공유했다.

 

“그동안 힘과 잔재주로 연명해 온 내 골프 실력이 그 명을 다한 것이 분명하다. (중략) 문득 '독학의 끝'이라는 말이 머리를 압박해 왔다. 독학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일종의 자각증상이다. 그동안 나름 버텼던 자만심, 모든 일에 나를 간섭해 온 그 자만심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포장되어 내 마음 한구석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중략) 세상 일이란 반드시 원칙과 정도가 있는 법이다. (중략) 항상 겸손한 생각으로 매사에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자긍심을 지키는 방책이라고 믿는다.(독학파)”

 

수필집에는 그밖에도 슝할매, 울보 제자 근조, 아내의 자리, 죄 없는 귀, 누죽걸산 변사또 등 유머와 삶의 땀 냄새가 흠씬 배어 있어 구수한 여운을 풍기는 글들로 엮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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