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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4. (화)

퇴계 이황 가라사대, 공부 잘해서 남 줘라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퇴계 이황 선생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의 유학자이자 교육자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그의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없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이 살았던 시기와 비슷하다. 그 드라마의 줄거리는 임금님 수랏간 내의 개혁을 추구했던 한상궁(진보)이 최상궁(보수)의 모함에 빠져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만 결국 장금이의 등장과 활약으로 인해 극복되고 치유된다는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것은, 장금이의 ‘인본주의(휴머니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라고 본다. 즉 뛰어난 음식솜씨와 의술을 가지고 자기 영달이 아닌 남을 위해 헌신했던 장금이의 정신이 500년 뒤의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고 본다. 드라마는 조선의 궁중 음식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정신은 현재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었기에, 우리네 음식문화와 관련이 적은 중동지방에서조차 시청률이 70%를 넘었다고 본다.

 

2. 퇴계가 살았던 시기의 정치판도 대장금과 유사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질 무렵, 당시 리더그룹은 불교 대신 유교(특히 안향이 도입한 주자학)를 사회 가치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고려왕조를 부정하지 않고 중흥해 전통을 이어가려는 정몽주를 비롯한 훈구파(보수)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확실하게 개혁하고자 했던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진보)의 충돌은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

 

결국 퇴계시대에 벌어진 4차례의 사화(士禍)로 인해 사림파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은 커다란 타격을 입고 산속이나 시골로 피신을 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들의 가치체계를 지속 발전시켜 성리학을 완성했고, 퇴계 사후에 발생한 임진왜란 무렵에는 정치의 실세로 등장하게 됐다.

 

3. 그렇다면, 퇴계는 과거에 합격하여 높은 관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단양군수를 자청해 낙향하였을까. 그리고 풍기군수를 거쳐 안동서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에 몰두했을까. 정치에 신물이 나서 낙향을 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산이 넉넉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좋은 직장마저 사표를 내고, 별로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설 학원(안동서원)을 차려서 책이나 읽고 쓰면서 평생을 보냈을까. 과연 퇴계는 세금에 대해 무슨 생각이나 있었던 것일까.

 

그와 같은 궁금증은 그의 철학인 4단7정론(四端七情論)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요약하면, 인간세상은 4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7정(희, 노, 애, 락, 애, 오, 욕)으로 구성되어 돌아가는데, 그 지향점은  4단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7정에 속한다. 기(氣)가 발(發)하여야 한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기업가들이 7정의 선봉장이리라.  반면, 퇴계는 7정에 대해 ‘본래는 선하지만 악으로 흐르기 쉽다’고 하여 그 타락의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4단의 영역이 더 강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理)가 더 발(發)하여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기 이원론과 이기 일원론의 논쟁이 다시 시작된다.

 

4. 세금의 눈으로 보면 이를 어떻게 해석할까. 누구든지 세금을 줄이려고 하고 적게 내려고 하는 것은 7정의 영역이다. 이를 탓할 것이 못된다. 원래 인간의 속성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4단의 거울 앞에서 이를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계가 아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세금을 절대로 포탈하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고 있다. 7정의 남용을 경계한 것이다.

 

누군가가 그 분야에 사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자 할 때 그 기준점은 필요하다. 그 기준점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 보다 한 두어 발자국 앞에서 등대지기 역할을 하는 ‘그것’일 것이다. 퇴계의 글을 보면, 현 시대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이지만, 분명한 것은 조세법률주의, 조세공평주의, 조세중립성의 원칙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5. 결국 퇴계는 공부를 해서 남을 주었다. 그 공부를 바탕으로 실학이 자라났다. 율곡과 정약용이 맘껏 활개를 칠 공간의 토양을 제공했던 것이다. 퇴계는 성균관 책임자에서 단양군수로 그리고 안동 시골의 도산서원으로 삶의 공간을 옮겼지만, 오히려 그 공간은 한양에 있을 때보다 몇배가 큰 도량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흔히 자식들에게 얘기하길, 공부해서 남 주나? 돈 벌어서 남 주나? 라고 하면서 출세하기를 강요하지만, 그러나 공부해서 남에게 주어야 하고 돈 벌어서 남에게 주어야겠다는 정신을 가진 자식이 결국 돈도 벌고 공부도 잘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퇴계가 그러했고 율곡과 다산 정약용이 그러했다.

 

내 가족 또는 내 기업이 잘 먹고 살기 위해 절세나 조세 회피 심지어 탈세를 하는 것은 납세자의 권리라고 치자. 그렇지만 그들에게 사상과 철학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조세에 대한 사상과 철학은 어디에 기반을 둬야 하는가. 지금처럼 국가 재정 건전성 유지가 어려운데도 재정지출은 늘려야 하는가. 아니면 늘어나지 않는 재정수입을 수수방관하고만 있을 것인가. 관계자들은 퇴계의 4단7정론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볼 일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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