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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0. (금)

[문예마당/隨筆]비의 나그네-②

이운우, 영덕署


를 워낙 좋아하는 그를 두고 남들 모두가 그놈의 비와는 前生에 무슨 원수가 졌는지 아니면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자신도 처음에는 은근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니 그가 비를 좋아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山行을 워낙 즐기다 보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는 날이면 산으로 가는 버릇에 산에서는 우산이 필요치 않으니 비 맞는 것이 당연하고 비와 안개 머금은 산의 정경이 맘에 들고 아예 진력이 나서 비와 산을 다 안아 버렸노라고 했다. 대기중의 수증기가 한데 모여 덩어리가 되어 공중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사라지는 것이 비인데 우리 인간도 지금 이 순간 떨어지고 있는 중이며 이는 비를 닮은 같은 나그네라고 했다.

는 게으르고 단순하게 산다. 얼마나 단순하냐 하면은 어제 일어났던 일도 잊고 사는 세상에 근심 걱정없는 사람이다. 하도 게을러서 자기 몸에 치장하는 것과 머리 감는 것, 옷 갈아입는 것, 평생가야 얼굴에 로션 한번 안 찍어 바른다. 그리고 핸드폰도 車도 없이 산다. 형식과 체면을 싫어한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하는 성미다. 가장 싫어하는 것이 文明의 利器이다. 老子와 莊子의 無爲自然을 좋아하고, 웬 친구는 그리 많은지…. 다양한 직종의 별의 별 친구가 다 있다. 처음에는 마음을 트기가 어렵지만 한번 친구는 평생 친구다. 그리고 비와 산을 좋아한다. 그가 비를 얼마나 좋아하느냐 하면은 오랜 가뭄 끝에 한밤중에 자다가도 빗소리가 들리면 좋아라 하고 산으로 비 맞으러 가잔다. 그래서 따라 다닌 것이 이제는 비 오는 날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내가 따분할 지경으로 비 오는 날엔 먼저 비옷을 챙겨 산으로 나서는 버릇이 생겼다.
오는 날이면 생기가 돌고 팔팔한 사람이 있다. 평소에는 비실비실 하다가 비의 女神 베오리가 그를 유혹하는지 아니면 酒가 그를 잡아끄는지 오래간만에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삼거리집(일명 '쌍과부집')이라는 주막촌에 노닥거리고 앉아 있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삼천원이요, 공짜 안주가 대여섯 가지로, 만원짜리 안주 하나만 시켜도 제법 짭짤하게 말술을 마실 수 있는 목로주점으로 비 오는 날만 가는 곳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70세 정도의 모친과 젊은 딸이 운영하는데 젊은 여주인에게 술에 취해 기분 좋으면 '젖퉁씨'이라 부르고(유방이 머리통 만하다나? 지가 눈으로 보기나 만져 보기나 했을까…. 홀로 상상이겠지), 맘에 안 들 땐 '어이! 뚱띵이!'이다. 그래도 별탈없이 이쁘게 봐주고 손님이 꽉차는 비 오는 날이면 안방을 비워 놓고 그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남의 눈총 받으면서도 예약손님이라고 둘러대고 안방으로 자리를 준비해 주는 재치도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까까머리(고등학교) 때부터 단골이란다. 꾸밈이 없는 분위기에 주 고객이 막노동꾼과 직장인이다.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주막이라 일단 분위기가 서민적이다. 찌그러진 주전자와 때묻은 탁자, 그리고 항상 시끌벅적하다. 주로 막노동꾼들과 직장인들이 고객이니 술 한잔에 자식 자랑과 상사들 씹는 재미, 그리고 미국 놈들 작살내는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고달픈 삶의 哀歡과 勞動의 신성한 의미를 느끼게 하는 진솔한 이야기가 항상 있어 비가 와서 좋고 막걸리 한잔이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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