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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9. (일)

기타

[隨筆]눈길(민주지산)-(上)

이종욱(서대구서)


한숨 자고 내다본 바깥은 밤인지 낮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보름경이었는지 달은 휘영청 떠 있고 온 천지가 설국이 된 날, 할머니는 나를 앞세우고 마실을 나섰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날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직감을 가진 여섯 살배기는 할머니의 지팡이를 마루 밑에서 얼른 꺼내 들었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혼자 가시지 않고 나를 앞세웠던 이유가 맛있는 것을 먹여주시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잔치집에 혼수오는 날이었는가 보다. 옷가지를 들여다 보며 신랑인 듯한 사람을 칭찬하느라 왁자지껄했던 기억이 난다.

아침 7시 광장코아에서 버스를 타고 8시 반쯤에 식당에 도착하여 물한계곡에서 건져올린 고디탕(충청도에서는 '올갱이'라고 적혀 있다)으로 아침식사를 하니 산에 대한 기대가 한층 커진다. 차는 지난 여름 분주했던 계곡 물을 거슬러 올라 겨울바람속에 따뜻하게 자리한 마을들을 지나 도마령이란 재에 올랐다.

나무계단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눈길의 조짐을 보이는 터라 팔각정에서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옷을 차려입었다. 출발에 앞서 단체사진을 찍고 한줄로 각호산 정복에 나섰다. 각호산까지는 45도의 경사길이 위로만 뻗어 있다. 바람은 잔잔하고 굴참나무 사이로 하얀 눈의 천지가 펼쳐 있다.

모두가 등산복 차림으로 일렬로 올라가는 모습은 부대가 이동하듯 질서정연하고 신속하다. 발에서 '뽀드득 뽀드득' 들리는 소리를 30여분 들으니 나의 생각은 깊어간다. 눈을 깊이 파낸 발자국, 폭설 속에 대체 누가 어디로 간 것일까? 침묵의 행군길은 무슨 수행자의 길과 같아서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산죽이 길을 따라 나란히 걸어가는 눈길은 잠깐 나를 과거로 여행하게 한다.

하여간 그날이 내 기억에 깊게 새겨진 이유는 눈으로 뒤덮였던 마을 풍경탓이었던가 보다. 이야기를 옛추억으로부터 시작한 이유는 오늘 산행도 그 날처럼 눈길로만 하염없이 걸었던 탓으로 덩달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했기 때문이다. 할머닌 허리가 굽어있었다. 가끔씩 보기가 딱했던지 동네 어른들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허리를 한번 펴보라고 일으켜 보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굳어 있었다. 평생을 농삿일로 살림을 일으켰던 이 나라의 어머니들과 같았다.

눈길이지만 따스했던 길이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보니 정상이 가까운 모양이다. 눈가루가 날리고 앞사람의 모자에 흘러내린 땀이 고드름이 돼 달려 있다. 모자를 단단히 잡았지만 바람은 연신 벗기려 들었다. 혼자 나선 길이면 여기서 되돌아서야 할 만큼 기세가 등등하다. 10시20분의 태양은 구름에 씻긴 해맑은 모습으로 내려보고 있는데, 길을 막고선 바위는 한가닥 밧줄을 내리고 있다.

밧줄을 타고 올라서니 평평한 암반의 정상이 나오고 각호산 표지석(1천176㎡)이 세워져 있다. 막 도착한 그룹과 사진촬영을 하고 아래 비탈을 내려보니 눈꽃이 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염치없이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고 한 장의 추억을 새긴다. 내려가는 길도 밧줄을 타야 하는지라 행렬은 정체됐다.

그 이름의 어원이 궁금한 민주지산을 향해 신발끈을 고쳐 맨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현재의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왜정시대때 지도를 제작할 때 민두름산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잘못 굳어진 듯 하다고 하니 이 이름 또한 과거사를 물어야 할 대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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