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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8. (토)

시장과 정부의 역할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역할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치안과 국방, 외교 등 공공재와 미세먼지, 환경오염 등 외부효과, 불완전 경쟁과 거시경제 안정화 그리고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사회안전망 등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교적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첨단 ICT기업에도 정부의 자금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있어서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기초 연구개발(ground breaking research and development)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출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시장의 실패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역할 역시 정부에게 요구되고 있다. 위험을 담보하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 시대 정부살림의 모습이다.

 

오는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각종 공약이 등장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버스 건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경기도교육감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내세워 득표에 크게 도움을 받은 김 교육감으로서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는 입장에서 비슷한 폭발력 있는 정책 이슈를 고민했고 이 과정을 통해 선택한 사업이 대중교통의 무상공급 내지는 완전 공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교통수단을 무료화해 준다고 하면 이를 싫어할 유권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재원의 마련이며 자원배분의 왜곡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추가적인 대규모 비용이 들어가는데 누군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하지 않겠나. 물론 현재의 세금부담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살림을 줄일 수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는 소위 지출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다른 살림 줄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국가재정이라는 나라살림에서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출범으로 새로운 공약사업 수행에 130조원의 재원이 필요하고 이를 새로운 증세 없이 추진하겠다는 방침 아래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80조원을 절감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구조조정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등 경계를 넘나드는 대체 교통수단간 선택의 교란은 물론 현 세대와 빚을 갚아야 하는 다음 세대간의 배분의 문제 등 매우 많은 자원배분의 왜곡이 발생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장에는 선택의 원리가 작동하고 정부에는 계약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한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자원배분이 이뤄지도록 하는 시장의 영역에서는 경제주체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반면에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나라살림과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에서는 거래비용이 중요한 결정요인이 되는 계약의 셈법이 대신하게 된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불확실성, 성과의 불명확성 등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은 특징이 있다. 우리는 정부를 홉스의 표현을 빌려 ‘리바이아탄’이라 부른다. 깨어 있는 시민과 투명한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역할, 그리고 보다 명확한 조건명시를 통한 계약의 실천이 정부살림 성과의 시금석이다. 커져만 가는 정부의 역할, 연구개발이 됐든 복지를 통한 사회안전망이 됐든 우리는 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한 정부를 만드는 것은 현명한 유권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재정규율을 만들고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를 대신해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건전한 살림을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의 돈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돈이기 때문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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