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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8. (토)

[문예마당/隨筆]비의 나그네-③ (끝)

이운우, 영덕署


름에 내리는 비는 일단 시원하다. 한 여름에 소나기라도 오는 날이면 밤이나 낮이나 우리는 '書出池'라는 곳에 자주 간다.

경주시내에서 10분 거리인 南山 七佛庵으로 가는 길목의 통일전 옆 아주 오래된 연못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있어 온 전설이 서린 곳이다. 못 한쪽켠에는 물 속에 기둥을 세워 지은 조선 중기시대의 '이요당' 이라는 정자가 있고 못 안에는 전체가 睡蓮으로 채워져 있는데, 한아름만한 연잎에 수직으로 꽂히는 소나기를 보고 있노라며 알 수 없는 청명함과 시원함, 그리고 고귀한 느낌을 준다. 청명함이란 연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共鳴을 이루고 진흙에서 핀 연꽃은 숙여짐이 없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비를 맞는다. 그리고 오목한 잎사귀 부분에 빗물이 고여 은구슬보다 더 투명한 방울되어 도르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여름날의 무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울철이면 우리는 문경새재로 달려가곤 했다. 날씨가 맑든 비나 눈이 오면 더욱 좋은 곳이 겨울 山行의 새재길이다.

사람들은 겨울비는 짖꿋다고들 한다.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보통인데 그 진눈깨비 내리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尙州에서 聞慶邑까지 몇십리 길을 눈과 얼음에 쌓인 도로 길을 겁도 없이 수도 없이 다니다가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곤 했지만 전국에서 겨울 등산객이 제일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한 문경새재 제1관문인 主屹關門에서 제3관문인 鳥嶺關門까지 30여리 길을 한 겨울에 비를 맞으면서 걸어본 느낌은 잊을 수 없단다. 白頭大幹 능선을 좌우에 두고 그 사이 꼬불꼬불한 길을 언 손을 호호 불면 몇시간씩 걷고 나면 겨울이 금방 지나간다. 그는 문경새재의 겨울비가 좋은 까닭은 한 겨울의 裸木이 눈ㆍ비 맞고도 의연하게 서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자주 찾는다고 했다.

모자라는 사람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람인지 모를 비의 나그네는 20년 동안 한 지붕아래 같이 살아 온 친구 같은 내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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