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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21. (화)

경제/기업

즐거운 도깨비

박정원(시인, 이천세무서)


 

벚꽃인데 아카시아꽃이라고 합니다
벚꽃이 지고 있는데 아카시아꽃이 진다고 합니다
굵고 매끈매끈한 벚꽃나무 둥치에
거칠고 가시가 돋아나 있다고 합니다.
아직 피지도 않은 아카시아나무 아래에서
밥그릇을 들고 떨어지는 꽃을 수북히 받아내라 합니다
누군가 벚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힘차게 흔듭니다
꽃잎이 눈발처럼 날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냅니다
아무리 받아먹으려 해도 받아먹을 수가 없습니다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사람들이 몰려갔다 몰려옵니다
밥그릇마다 꽃잎들로 가득합니다
광장엔 빈 연단만 남았고 나는 아카시아꽃이 필 때까지
연단 위에서 꼼짝 않기로 합니다
다시 사람들로 꽉 찹니다
똑같은 연설이 레코드처럼 반복됩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 시간쯤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아카시아꽃이 피려면 한 달포쯤은 더 기다려야 되는데요
방망이를 아무리 두드려도 밥그릇을 채우지 못하는
꽃잎그늘 아래서 너도나도 미쳐가고 있는 중!
이리저리 채이고 밟히는 신문지 한 장만이 그 그늘을
의연히 거닐고 있습니다
어언 40년째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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