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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6.29. (토)

관세

명품 밀수 이야기

이득수 관세청 종합심사과



지난 한해 동안 내국인 출국자가 700만명을 넘었으며, 수천억원이 해외 명품 쇼핑가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해외 쇼핑족에게는 '세계는 넓고 쇼핑할 곳은 많다' 그대로였다. 춘절(설) 연휴를 전후로 한 홍콩의 빅세일(Big Sale) 기간과 뉴욕, 로마, 밀라노, 파리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쇼핑가는 모두 한국인의 독무대. 수입명품의 거래규모는 2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사이버 거래의 활성화로 명품거래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력 있는 20∼30대의 L(Luxury)세대에게 명품은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닌 신분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명품이란 그 브랜드에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뛰어난 제품을 의미하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고가의 수입 브랜드 상품을 지칭한다. 비싸다고 다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희귀성이야말로 소비심리의 본질이라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루디외가 지적한 바 있다. 취향이 계급을 말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살 수 없는 것, 어디서나 구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자신을 남들과 '구별' 시킨다. 그래서 명품은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남다르기', '티내기'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입명품 선호로 인한 과열현상은 여러 가지의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초래한다. 소비에 대한 합리적인 가치관 및 구매능력을 갖추지 못한 젊은 계층의 무분별한 명품선호 열풍은 허영심을 유발하고 소비문화를 왜곡시킨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핸드백이 없어서 못 판다고 하는 명품 구매행태는 사회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며, 명품 보유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는 물질만능주의·몰인간화의 팽배는 매우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가짜 상품이 범람하는 '가짜 천국'이란 오명은 국가 이미지 실추의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소비자들은 명품소유 욕구를 가짜 상품의 구매로 만족하려 하고,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판매자는 가짜를 진짜로 속여 파는 등 가짜 상품 유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명품은 일반수입화물·특송화물국제우편·여행자 휴대품 등 다양한 경로로 수입되고 있는데, 무역거래가 복잡하고 국내 판매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각종 편법과 밀수가 성행하고 있다. 소위 관광미끼 명품 운반상과 명품 보따리상 등은 세관에 노출되지 않은 젊고 세련된 인물들이어서 적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요즘 TV 방영되고 있는 '최재원의 양심추적-탈세와의 전쟁'(KBS 1TV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비친 입국장 풍경은 한마디로 가관이다. 면세 한도 400달러를 수십배 웃도는 고가품 보따리엔 유명상표 가방, 구두, 의류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인천공항 입국장은 세관의 감시망을 통과하려는 여행객과 이들의 밀반입을 차단하려는 세관원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으로 하루 종일 긴장감이 흐른다. 관세청에서는 기업의 물류비용을 줄여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세계 최일류 여행자 통관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통관절차를 간소화하고 검사비율을 축소해 왔으나, 밀수입자들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이 직접 나서 밀수꾼을 잡는 고전적 방식에서 폐쇄회로(CCTV)를 이용한 무인(無人) 종합감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 밀수 척결에 획기적인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관세청은 지난 한해 3천11건, 9천543억원 상당의 밀수·부정무역 사범을 검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밀수단속에 한계가 있다. 밀수의 속성상 수요가 있으면 항상 공급이 존재하므로 명품만을 좇는 무분별한 명품선호 현상을 과감히 외면하고 건전한 소비문화의 정착에 힘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밀수예방책이 되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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