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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20. (월)

부산시내 금은방 '세금불만' 한날한시 모두 셔터내려

공화당에 지원요청 '찬밥', 후견자 권력투쟁 낙마가 원인

 


국세청 발족('66년)직후 몇 년동안 세무행정의 강력한 파워는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는 국세청의 발족배경과 세무행정에 대한 통치권자의 강력한 힘 실어주기 전략에서 비롯된 국세청의 파워가 그만큼 셌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개발지상주의에 국가정책의 무게가 실리면서 그 재원을 담당할 세무행정에는 그만큼 파워가 실렸다.

'강권세정'은 유·무형의 조세저항으로 나타났다.

'68년 초여름. 부산지역 금은방(金銀房)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금때문에 못살겠다는 것이 상인들의 표면적인 주장. 그러나 속내를 살펴보면 세금문제 외에 이른바 뒷골목 세계, 정치인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포동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5층 건물 지하에서 일단의 젊은 청년 20여명이 한 중년남자를 중심으로 머리를 읍조리고 있다. '조폭' 대원들이 두목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내가 말야. 사세청장(국세청이 생긴지 얼마 안된 관계로 국세청을 '사세청'으로 호칭)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 참았는데 이젠 아니야. 디데이를 모레로 한다."

'두목'의 명령이 떨어지자 청년들은 일제히 각자 맡고 있는 자기관리지역을 돌며 문닫을 날짜와 행동요령을 알렸고, 급기야 부산지역의 금은방이 일시에 모두 셔터를 내린 것이다.

이같은 금은방 일제휴업은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사회분위기로 볼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정집단의 단체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특히 그해 1월에 발생한 '1·21 사태'(북한특수부대 청와대 침투사건)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존립가치를 안보 제일주의로 끌고갔기에 공권력에 대한 집단저항은 곧 '반국가'로 치부돼 '처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부산의 금은방들이 세금이 불만이라며 일제히 문을 닫은 것이다.

철시(撤市)상황을 확인한 부산지방국세청 국장 A씨는 얼굴이 파래져 서울 공화당 간부에게 급히 전화를 넣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간부의 태도가 영 냉랭했다. 그전 같으면 '알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말미에 붙었으나 이날은 이쪽의 '지침하달 요청'에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A씨는 당황했다. 지방청장한테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탕탕 쳐놨는데 상인들이 철시를 해버렸으니.

지금까지 '해결사'라는 닉네임까지 얻으면서 다방면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왔던 자신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게 된 것은 둘째치고 막강한 배경이었던 공화당의 지원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초조하기만 했다.

A씨는 그 길로 공화당 부산시 지부를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는 아예 노골적인 찬밥취급이다.

"당신 이제 정보부장쪽에 붙어. 여긴 별 볼일 없어."
시(市) 지부 한 간부의 비아냥섞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거였구나'하고 딱 감이 왔다.

'공화당 의장이 바뀌더니 그 여파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두달전인 5월말 김종필(金鍾泌) 공화당 의장이 모든 공직에서 갑자기 물러났는데 그 사태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김 의장의 사퇴사유가 권력다툼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것은 다 아는 일.

당시 부산시내 금은방 주인들은 공화당 당원이거나 그 영향권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김종필 의장을 추종하는 세력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또한 공화당 부산시 지부 지도층이 사업상 금은방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도 큰 이유였다. 세금문제는 거의가 공화당 시 지부와 지방청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종결되는 게 보통이었다. 공화당의 당의장은 상인들에게 절대적인 후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후견인이 권력다툼에서 밀리자 그 반발심리로 철시를 단행한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그 사태는 금은방들이 3일뒤 문을 다시 여는 것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은 당시 정치와 어두운 집단의 연관관계는 물론 권력투쟁의 와중에 함께 묻어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정의 딜레마 등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졌다.

당시 부산廳 간부 A씨는 금은방들의 철시는 세금불만뿐만 아니라 '주군'(공화당의장)에 대한 일종의 '예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서채규 本紙편집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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