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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09. (목)

신생맥주회사 전방위 '휴가비살포' 억센운으로 회피


위 아래 다 잡혀가고 혼자 덩그렁, 병원입원이 살려

 

-오늘 아침 신문에는 또 누가 잡혀갔다고 나올까.-

"청와대는 온통 도둑놈들 천지군" "그 사람이 그랬어? 뭐 여름하고 겨울 양복 달랑 두벌이라던데…. 그렇게 호박씨를 깠어?"

70년대 초반 어느해 가을. 세간의 화제는 온통 일부 권력집단의 부정부패사건이었다.

그 가운데는 권력을 등에 업은 일부 청와대 비서진이 중심에 선 한 기업의 뇌물공여사건이 세정가에 많은 화제를 뿌렸다. 특히 뇌물이 난무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관계공무원이 줄줄이 얽혀 들어가는 와중에 남이 보기엔 뇌물수수에 가장 근접했을 법한 사람이 용케도 살아나 '이해하기 힘든 사건'으로 회자된 일이 있다.

바로 어느 신생 맥주회사 로비에 얽힌 사건이다.

당시에는 주류제조면허 하나 따려면 장관 두세명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물론 그만한 이권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철통같은 아성인 OB·크라운 양대산맥이 맥주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마당에 맥주제조회사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세력'이 맥주회사를 차리고 나선 것이다. 그 뒤에는 청와대 某실력자가 실제 주인이라는 말이 파다했는데, 뜬소문이 아닌 사실로 훗날 확인됐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 배경이었다고는 하지만 일을 추진하고 마무리하는 데는 억지로 회사를 만든 것에 비례해서 '기름칠'이 많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 맥주회사는 옷깃만 스쳐도 돈을 뿌린다 할 정도로 물량공세를 폈다.
               
           

           

 


국세청과 주류제조사와의 관계는 절대적. 상부지침에 따라 제조면허는 나갔지만 원체 지지기반이 빈약한 상태에서 밀어붙인 탓에 그 회사는 관계공무원, 특히 관계세무서 말단직원에까지 물량공세를 폈다.

국세청 중견간부인 A씨. 아침 출근시간이 다 돼 가는데 위아래 직원 10여명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가을 날씨는 청명한데 A씨의 마음에는 왠지 불안한 먹구름이 자꾸 깔린다. 출근시간이 한 10분쯤 지났을까. 아니나 다를까 한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다 잡혀갔습니다'를 연발하는 게 아닌가. 얼마후 기관원 두사람이 찾아와 사건 개요를 대충 설명하기 전까지는 도무지 뭐가 뭔지를 모르고 마치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

지난 여름휴가때 문제의 맥주회사로부터 휴가비를 받았던 사람들이 모조리 잡혀갔다는 것을 안 A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휴가비'였기 때문이다.

청렴에 관한한 남들에 비해 특별하지 않은 A씨가 그 마(魔)의 휴가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지난 초여름 발병한 장염 때문이었다. 평소 장이 별로 안좋아 고생하던 A씨는 마침 심덕좋은 국장을 만난 덕분에 입원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완치를 목표로 무려 20여일을 입원했는데, 상사의 배려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특혜. 그런데 그 특혜가 장염을 치료해준 것은 물론 마의 수렁에서 그를 구해준 것이다.

맥주회사가 휴가비를 줄 사람 명단을 만들어 날을 잡아 국세청 관계부서를 한바퀴 돌며 봉투를 돌린 것인데, A씨는 입원해 있는 바람에 수령표시란 체크에서 빠진 것이다.

위 아래는 몽땅 잡혀가고 가운데 자신만 혼자 덜렁 남아있는 모습.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사건 개요를 청장한테 보고하고 그길로 시경으로 향했다.

"자네는 왜 왔어? 병원에 입원했었잖아."

상사가 그 와중에서도 혹시 A씨도 뭔가 문제가 생긴건 아닌지를 몰라 보호해줄 요량으로 던진 말이다. 코끝이 찡해진 A씨는 조사반장을 만났다. 그리고는 맥주회사가 억지로 떠맡기다시피 했다는 등 나름대로 '구명'을 위한 변을 토로했다.

"다 끝난 얘깁니다. 괜한 수고마세요"

조사반장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던진 말투에서 A씨는 절망을 직감했다. 까마득하게 저 높은 선상에서 이미 '정리'로 가닥이 잡혔기 때문에 그 어떤 변명도 통할 리 없었다.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 그 A씨는 훗날 이사관까지 승진했고, 세정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지금은 한 세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서채규 本紙편집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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