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무한연대책임… 외감법 제 17조 개정돼야
회계사 손해배상청구제 너무 가혹하다
한 국가에서 일부 기업의 분식회계는 국가 신용도 하락은 물론,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끼친다. 더욱이 신용등급의 하락은 곧바로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쳐 대규모 국제자본의 유출을 초래하는 경제적 리스크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분식회계는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분식회계의 근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차입금과 주가 관리 ▶금융기관의 심사기능 미비 ▶정부의 인위적인 산업정책 ▶정부의 감독 부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회계학적 측면에서의 분식회계에 원인이 있다.
여기엔 대주주나 경영진의 회사 자금 횡령 및 비자금 등으로 부실을 키우면서 이를 분식회계로 은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분식회계 조사 강화와 그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분식회계는 먼저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 또한 회사의 채권자와 거래처에 역시 손해를 끼친다. 이들 채권자 중에는 국가의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금융기관도 있어 분식회계로 인한 피해는 개인의 피해를 넘어서 전체적인 예금채권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는 국가,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신용도 하락은 국가경제 전체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기업 등의 분식회계로 인한 금융, 경제적인 불안정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분식회계는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 파장이 크게 미친다.
결국 분식회계는 경제주체 모두에 대한 시장의 신뢰성 상실을 초래한다.이는 주가 폭락과 기업 도산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점에 기업의 외부감사를 하는 공인회계사와 기업(일부 분식회계라는 범죄를 자행한 기업), 정부(시장경제의 감시자), 국회의원(올바른 입법 결정권자), 제4부이자 국가정책 집행의 외부감시자인 시민단체 등이 있다.
기업의 분식회계로 인해 부도가 나거나 휴폐업 또는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가 이에 따른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기업주나 임원을 상대로 법적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는 해당 기업주나 임원 거의 대부분이 법적 무자력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의 임원이나 대주주보다는 '분식회계를 발견하지 못해 부실감사의 책임이 있는 공인회계사(이하 회계사)'를 상대로 책임을 추궁한다.
그러나 이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기업주는 법적 무자력자라는 이유로 피소 대상에서 빠져나가고, 반면 기업의 속사정(회사에서는 기밀을 회계사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음)을 알 수 없는 회계사에게 단지 외부감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수년간 전개되고 있는 투자자들의 이같은 회계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문제는 회원 1만명 시대를 앞두고, 특히 국제회계신인도 TOP 10권 진입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책정한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최우선 선결과제로 떠올랐다. 이 문제가 이른바 회계사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서태식 회계사회장도 지난해 6월 2년 임기의 회계사회장에 재선되면서 "회계부정 사건이 터지면, 회계 부정을 자행한 회사의 임직원보다 회계 부정을 발견하지 못한 공인회계사에게 회계 부정의 책임을 전가하는 풍토가 만연하다"고 지적하고 "문제는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지 않아 회계사에 대한 과도한 징계와 규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마치 부실회계의 온상인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며 이의 개선이 시급함을 역설한 바 있다.
기업주 회사 회계정보 비공개 불구
회계사에 회계부정책임 전가 빈번
"자본시장에 참여했다가 손해를 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신의 그릇된 판단에 따른 손해가 아니라, '잘못된 회계정보를 생산한 자나 또는 회계정보 생산에 관여한 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소송 남발"이니, "가혹한 책임 추궁"이라며 항변할지 모르나, 손해를 본 사람이 자신의 손해를 만회할 기회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데 이를 포기할리 만무하다.
또한 헌법 제27조제1항이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처럼 헌법성 보장된 재판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함부로 소송남발이라 매도할 수도 없다…(중략)"
이성우 동아대 법학부 교수(법학박사)는 최근 월간 공인회계사보에 실린 '공인회계사의 손해배상책임제도 개선방안'이란 자신의 연구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현행 손해배상제도가 너무도 가혹하게 운영되고 있어 여간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분식회계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회사 임원'이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자신의 책임재산을 남겨두고 분식회계를 저지를 리 만무하다"고 전제하고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법적 무자력 상태(자기 명의의 재산이 없는 상태)에 있어 결국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살아남는다'는 냉소적인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 교수는 "분식회계로 손해를 본 투자자나, 영세 금융기관은 '공인회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그 책임재산에 대한 가압류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하게 된다"면서 "원고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투자했거나 돈을 빌려 준 사실만 밝히면, 그 다음부터 모든 증명책임은 피고인 공인회계사가 지게 된다"고 현행 손해배상 청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욱이 이 교수는 "공인회계사가 수임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때에는 당연히 위임인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회계사가 회사를 기망하거나 회사와의 위임계약을 위반해 회사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제하고 "회사의 회계정보는 회사가 장악하고 있고 회계사가 회사에 대해 회계정보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행사 방법은 감사인으로서 의견거절을 하거나 위임계약을 해지하는 것 뿐"이라고 실상을 설명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현행 회계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제는 비현실적인 무한 연대책임 제도로, 이를 지속화하는 것은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전시성 입법인 동시에 사법부에게 모든 짐을 전가시키는 비겁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고 "피해자의 경제력과 가해자의 변제능력 등을 감안해 입법과 사법이 함께 책임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현행 손해배상제의 현실적 개선방안으로 첫째, 외부감사인보다 감사기업의 재무정보 접근 및 분석능력이 훨씬 우월한 금융기관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원고인 경우에까지 무과실의 입증책임 부담을 피고에게 지우는 현행 '외감법 제17조'는 반드시 법의 일반원칙에 맞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상법 개정안에서 임원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는 외감법에 규정하라고 미룰 것이 아니라, 외감법 적용대상이 아닌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인에게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일본의 경우와 동일하게 '상법에 임원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와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를 함께 규정해야 한다"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회계사회와 법학박사인 이성우 교수의 이같은 주장(현행 회계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제는 비현실적인 무한 연대책임제로 외감법 제17조와 상법 개정안의 개정 등)에 대해 정치권인 국회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참여연대는 이같은 외감법, 증권거래법 등이 회계법인을 증권집단소송 대상에서 사실상 빠지게 하는 법 개정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있는 입장이다. 즉 분식회계가 증권집단소송 적용대상이 되는데다 회계감사의 책임성을 제고하고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참여연대는 부실한 회계감사와 관련,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회계법인의 책임을 부당하게 감면해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결국 부실 회계감사와 관련 회계법인의 과실을 원고측에게 입증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회계법인들을 증권집단소송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고, 이로 인해 증권집단소송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는 것이 참여연대의 입장이다.
특히 참여연대는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그 배상책임을 회계법인과 기업 등 피고들간의 연대책임제 형태에서 비례책임제 형식으로 나누도록 했다고 전제하고 이 경우 기업과 회계법인간 책임의 정도를 분명히 나누기 어렵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비례책임 형태로 배상책임을 묻는 법은 우리 법률상 채택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제회계신인도 TOP10 진입
올 4월 총선에 의원 배출하자!
이같은 참여연대의 반대입장도 입장이지만 회계사회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해주지 않는 곳은 또 있다. 바로 국회로, 올해 국제회계 신인도 톱 10 진입을 최대 역점업무로 설정한 회계사회 입장에서는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을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여건과 사정이 그리 만만치 않다.
회계사회는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국회 재경위원인 이계안, 엄호성 의원 등을 통해 외감법과 증권거래법 개정안 등을 중점 제기했다. 특히 이들 재경위원은 회계사회의 입장과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관련 법안을 입법 발의하는 열의를 보여줬다.
그러나 문제는 여타 대다수 재경위원들이 정치적인 여러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 두고 회계사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년 4월 총선에 회계사 출신 국회의원을 적어도 4∼5명이상 배출해 국회 재경위로 진출시켜야 한다"고 말해 대 국회관계의 회계사회 입장 전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