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국내 4대 회계법인(삼일, 안진, 한영, 삼정) 중 某 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회계사가 수임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에는 회계사가 당연히 위임인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한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회계사가 회사를 기망하거나 회사와의 위임계약을 위반해 회사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란 거의 없다”고 밝혀 현행 회계사에 대한 무한연대 책임제는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이같이 주장했다.
또 다른 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도 “회사의 회계정보는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닌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실제로 회계사가 회사에 대해 회계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강제력이 있는 권리가 아닌데다 이 때 회계사가 회사에 대해 할 수 있는 권리행사 방법은 감사인으로서 의견거절을 하거나 위임계약을 해지하는 것 뿐”이라고 현실적인 실상을 이같이 설명하고 이의 개정이 시급함을 역설했다.
이에 앞서 이성우 동아대 법학부 교수(법학박사)는 회계사회에 밝힌 기고문(2007년 월간공인회계사보 10월호)을 통해 “분식회계로 인해 손해를 본 투자자나, 영세 금융기관은 예외 없이 ‘공인회계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그 책임재산에 대한 가압류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을 하게 된다”면서 “원고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에 투자했거나 돈을 빌려 준 사실만 밝히면, 그 다음부터 모든 증명책임의 짐은 피고인 공인회계사가 지게된다”고 현행 손해배상 청구제도의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했다.[사진]
기고문에서 이 교수는 “현행 회계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제는 비현실적인 무한 연대책임 제도이며, 이를 지속화 하는 것은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전시입법인 동시에 사법부에게 모든 짐을 전가시키는 비겁한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 “피해자의 경제력과 가해자의 변제능력 모두를 감안해 입법과 사법이 함께 책임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기고문에서 이 교수는 현행 손해배상제의 현실적 개선방안으로 첫째, 외부감사인보다 감사기업의 재무정보접근 및 분석능력이 훨씬 우월한 금융기관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원고인 경우에 까지 무과실의 입증책임을 피고에게 부담지우는 현행 ‘외감법 제17조’는 반드시 법의 일반 원칙에 맞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교수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현행 손해배상제도가 너무도 가혹(苛酷)하게 운영되고 있어 여간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 “분식회계라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회사 임원’이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로 자신의 책임재산을 남겨두고 분식회계를 저지를 리 만무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교수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법적 무자력 상태(자기 명의의 재산이 없는 상태)에 있어 결국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살아남는다’는 냉소적인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상법개정안에서 임원의 손해배상책임 감경 근거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는 외감법에 규정하라고 미룰 것이 아니다”면서 “외감법 적용 대상이 아닌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인에게 법 적용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일본의 경우와 동일하게 ‘상법에 임원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와 외부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감경근거’를 함께 규정해야 한다”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경부 금감원 등 정부당국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이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개정 시기를 3월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다. 아직은 새 정부가 들어서지도 않았고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다는 현실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분식회계가 증권집단소송의 적용대상이 되는데다 ‘회계감사의 책임성 제고-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에 따른 시대적 흐름에 역행 한다”며 이의 개정에 달갑지 않은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입법당국인 국회 역시 오는 4월9일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총선출마자 간의 교통정리와 이합집산이 극명하게 갈려 있어 이 문제를 현실화하기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한편 정작 이 법 개정안 마련의 주체인 한국공인회계사회(회장. 서태식)는 사안의 시급함과 회계사 회원들이 불합리한 법적용을 받고 있는데 대해 정부당국과 시민단체, 국회 등의 반대에 밀려 이를 조속히 해소하지 못하면서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다만, 새해 들어 회계사회는 사안의 중요성과 시대적인 흐름과 현실적인 여러 입장과 문제점을 신중히 검토해 가면서 특히 ‘법적안정성 측면’ 등을 고려해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마련, 이를 현실화 해 나간다는 입장이다.